2부 <문 틈에서> 제12장. 사랑이라는 이름의 통제
“사랑이라는 말, 참… 이상해요.”
하진이 창밖을 보자 영애의 시선도 따라갔다.
한낮의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 옆 풀잎들.
뜨거운 빛을 견디다 못해 힘없이 시들어 있었다.
빛은 넘치는데, 생명은 오히려 꺼져갔다.
손끝을 만지작거리던 하진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엄마가 사랑한대요. 늘 그래요. 저를 위해서래요. 그런데… 왜 그 말이 그렇게 숨 막힐까요?”
영애는 듣고 있었다.
“할머니 병문안을 다녀온 날이었어요. 엄마가 싸준 물건을 전해드리고 왔는데, 기운도 없고 마음도 좀 그랬어요. 그래서 방에 들어가 누웠거든요. 근데 엄마가 계속 밥 먹으라고…. 진짜 그럴 기분이 아니었는데.”
하진의 눈빛은 달아올라 있었다.
“결국 제가 소리쳤어요. 화가 나서요. 근데 그날 밤, 아빠는 자고 있던 절 깨워서 억지로 밥 먹이고 씻기고… 다시 재웠어요.”
하진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그런 일이… 지금도 반복돼요. 수박 안 먹겠다고 해도 기어이 먹으라고. 화장실 가는 게 싫어서 전 수박은 별로거든요. 어제는 샤워하라고, 모시 베개 베고 자라고…. 그 베개 꺼끌꺼끌해서 잠도 안 오는데. 나를 위한다는 엄마 말은 정말 귀가 먹먹해져요.”
울컥하며 하진은 말을 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생일이었어요. 로봇 갖고 싶다고 엄마한테 졸랐어요. 엄마는 ‘기대해’라고 웃으셨고요. 근데 도착한 건… 비싼 책상이었어요. 형처럼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요.”
영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자기 ‘좋은 세계’의 그림을 자녀에게 요구하다 생기는 갈등.
그 익숙한 패턴이 하진의 이야기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었다.
“전 진짜 로봇이 갖고 싶었거든요. 제가 막 울었더니 엄마가 화를 냈어요. ‘이게 더 비싼 거야. 너 로봇 많잖아!’ 그러곤… 제가 발버둥을 치자 저를 때렸어요.”
하진은 짧게 웃었다.
“지금 보면… 그건 엄마가 원하는, 엄마의 ‘좋은 세계’였던 것 같아요. 형처럼 공부 잘하길 바라는 그림. 근데 제가 원하는 건, 제 ‘좋은 세계’엔…. 그냥 로봇이 있었던 거예요.”
영애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 ‘좋은 세계’는 값지고 옳은 걸로 채워지는 건 아니지. 단지 욕구를 충족해 주기만 하면 되니까.”
하진은 턱을 치켜들었다.
“근데 엄마는 항상 ‘비싸다, 옳다, 나중에 도움이 된다.’라면서 자기 말대로 하래요. 아무리 비싸고 미래에 좋다고 해도… 제가 원하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은 아니라고요.”
영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랑이 아니라, 강요로 느껴졌다는 거구나.”
“네. 절대. 엄마가 자기 마음 푸는 거 같아요. 저를 통해 대리만족하려고.”
하진은 한숨을 쉬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예요. 늘 가난했던 얘기. 검정고시 본 얘기. 그렇게 명문대 갔다는 얘기… 계속 반복해요. 근데 저는 그 길. 가고 싶다고 말한 적 없거든요.”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가 원하는 걸 너는 원하지 않았다는 거구나.”
“네. 아빠가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였고요.”
영애가 되물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걸 너도 원하라고 강요받는 것 같았겠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하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영애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랑과 통제는 공존할 수 없지.”
“사랑과 통제는 다르다고요?”
하진이 되물었다.
영애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걸 존중하는 거지. 내가 원하는 걸 잠시 접더라도 상대가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하지만 통제는… ”
하진이 말을 서둘렀다.
“엄마가 원하는 걸 저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거죠. 엄마 욕구 충족하려고. 제 욕구는 무시하면서….”
영애는 미소 지으며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맞아. 사랑은 Caring Habits을 하거든. 상대가 힘을 얻도록…. 통제는 자기가 힘을 얻으려고….
하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Deadly Habits을 하는 거지.”
하진은 영애를 쳐다봤다.
“존중, 경청, 배려… 그런 거요. 선생님이니까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우리 엄마 같은 보통 사람은 Caring Habits, 그런 것 동화 속 얘기 같은데요?”
영애가 웃었다.
“그럴까? 엄마도 충분히 할 수 있을걸?”
하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엄마가요? 말이 안 돼요.”
영애는 몸을 약간 앞으로 당겼다.
“엄마도 한때는 했을 거야. 누군가를 좋아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고. 그러니까 아빠와 결혼했겠지? 그걸 보면 Caring Habits을 하기로 선택하고, 또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같은데?”
하진은 눈을 크게 떴다.
“왜? 믿을 수가 없어?”
영애는 그의 큰 눈을 보며 물었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Caring Habits을 한다고 해봐? 이때 엄마는 어떤 욕구를 충족하고 싶었을까?”
“사랑?”
하진은 말끝을 올렸다.
“그렇지. 그럼 엄마가 누군가에게 Deadly Habits을 한다고 해봐? 이때 엄마는 어떤 욕구를 충족하고 싶었을까?”
하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 알겠어요. 힘 욕구요. 선택한다는 걸 알겠어요.”
창밖을 내다보던 하진은 시선을 돌려, 영애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좀 이상해요.”
“응?”
“엄마는 정수 실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이랑은 잘 지내요. 근데 저랑 형한테만 유독 간섭이 심하거든요. 형은 말 잘 들으니까 문제없고. 엄마는 저보고만….”
영애는 입가를 살짝 풀며 말했다.
“그러든? 많이들 그래.”
“왜 그래요? 사랑한다면서. 사랑은 사랑이고, 통제는 통제인데.”
영애는 하진의 시선을 미소로 받아들였다.
“사랑과 통제를 같은 거라고 오해해서가 아닐까?”
“통제를 사랑이라고 믿는 거예요?”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만 통제하거든. 무섭거나 그저 알고만 지내는 사람에겐 통제하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둬. 사랑하는 사람한테만 그러니까, 꼭 가까운 사람하고만 갈등이 많이 생기더라고.”
하진은 잠시 후 가볍게 말했다.
“엄마도 통제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게 분명해요. 엄마는 자기가 저를 통제하고 있다는 걸 모르겠죠?”
영애는 하진의 말을 되받았다.
“아마,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지도….”
하진은 뾰로통하게 말했다.
“엄마는 맨날 자기가 원하는 것만 요구해요. 제 요구는 무시해요.”
“엄마의 방식으로 네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한다는 거지?”
하진이 빠르게 맞장구쳤다.
“네. 맞아요. 내 삶이 아니라, 엄마의 삶을 대신 살라는 거죠.”
하진은 피식 웃었다.
영애도 조용히 웃었다.
“엄마의 ‘좋은 세계’와 네 ‘좋은 세계’엔 같은 그림도 있고, 다른 그림도 있겠지? 교집합과 차집합 같은 거.”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죠? 그 차집합.”
영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백처럼 말했다.
“그 차집합을 소중히 여기는 게 사랑 아닐까?”
하진이 영애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왜?”
영애의 물음에 하진은 바로 앉으며 대답했다.
“아니, 선생님은 낯설어서요. 엄마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 말이 무거워요?”
영애는 대답 대신 미소 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네가 원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도, 네 욕구를 존중하는 사랑.
영애도 그게 쉽지 않아서다.
끊임없이 깨어 있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 * *
하진은 상담실을 나섰다.
7월의 해는 쉽게 지지 않았다.
세상은 아직 환했고, 나뭇잎은 찬란한 햇빛에 반짝였다.
풀잎 같은 하진은 우뚝 선 나무가 되고 싶었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데, 하진의 마음은 그림자보다 더 어두웠다.
문득 드는 생각.
사랑이란 게, 누군가에게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이기적 명분일지도….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행동은 정말 사랑 맞나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누군가에게 그도 원하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누군가의 욕구를 충족하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의 강요가 누군가의 욕구를 좌절시키고 있지 않나요?
※사랑과 통제
사랑은 상대의 욕구를 존중하니까 상대가 원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때로는 상대가 원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도, 상대에게 Caring Habits를 한다.
나의 그 행위로 상대방이 살아갈 힘을 얻게 되려는 것이다.
반면 통제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한다.
이런 Deadly Habits은 상대방이 단절감으로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사랑과 통제는 상대방의 욕구 충족과 좌절, 소통과 단절을 초래하는 나의 행위로 설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