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죽어가는 중일지도 몰라.

2부 <문 틈에서> 제11장. 소통과 단절

by 박광석

상담실 문이 열리고, 하진은 힘없이 들어섰다.

눈빛은 맥없이 허공에 두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영애는 몸을 돌려 반겼다.

“어! 하진이 왔구나. 어서 와.”

대답은 없었다.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네?”

“….”

영애는 조용히 옆에 앉았다.

“엄마가… 저한테 말을 걸어왔어요.”

하진이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 말?”

“‘오늘은 일찍 잘 거지?’라고요. 갑자기.”

하진은 어금니를 꽉 문 근육이 움직였다.

“제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엄마가 또 쫓아와서 말했어요. ‘너 요즘 밤마다 12시 넘어서 자잖아. 그게 뭐야? 학생이. 그러니까 학교 다닐 때 성적이 그 모양이었지. 안 그래? 그러고도 학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

하진은 영애가 앉은 쪽으로 몸을 살짝 틀었다.

“제가 나쁜 놈이라 그럴까요?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엄마 말이 다 사실인데.”

“그럴 리가. 누구라도 그랬을걸? 혹시 Fact 폭격이라는 말 들어봤을까?”

하진은 눈이 반짝였다.

“Fact 폭격… 맞아요! 다 사실인데, 그게 폭격이네요.”

“듣는 사람이 상처받으면 폭격인 거지.”

하진은 내친걸음처럼 말을 이었다.

“그래서요. 제가 엄마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거든요. 마음의 문도 잠그고요. 닫힌 문으로 엄마에게서 저를 분리한 거죠.”

하진의 힘없은 말이 느려졌다.

“엄마를 분리하면 기분이 좋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혼자 있는 밤새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왜 그럴까요?”

영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랬구나. 소통은 욕구 충족의 통로이거든. 소통되어야 사람하고 심리적 요구가 충족되겠지? 그래야 기분이 좋고. 하지만 단절되면 어때?”

영애는 하진에게 눈으로 물었다.

단절되면…. 욕구 충족의 통로가 끊기겠네요. 그럼 기분도 나빠지고요.”

영애는 하진의 대답에 미소 지었다.

“기분만 나빠질까?”

하진은 눈을 끔뻑거렸다.

하진의 대답이 없자 영애가 물었다.

“네가 기분 나쁠 때, 넌 무엇을 했던 것 같아?”

잠시 생각하던 하진은 번쩍 눈을 떴다.

“아, 그거. 기분 나쁠 때…. 막 행동해요. 아무거라도. 그리고 지치면 모든 걸 멈춰요. 몸도 손가락도 소화하는 것도 눈 뜨는 것도….”


영애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좀 아니다 싶은 행동을 하는 것 같아? 분별력이 떨어진 사람처럼?”

하진은 힘없이 대답했다.

“네. 그런 것 같아요.”


“단절되면 마음이 힘드니까. 우울해지고 불안해지고…. 중독 같은 문제행동도 다 마음이 힘들다는 얘기 아니겠어?”

하진은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다.

“단절이 그렇게 무섭다니까. 단절되어 봐. 어떻겠어? 소중한 관계에서 욕구 충족이 안 되니까, 특히 사랑 욕구 같은…. 아무거라도 하게 되겠지?”

영애는 하진의 심각한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몸에 나쁜 거라도, 자기에게 해를 끼쳐도. 뭐라도 하려고 하지 않겠어? 욕구만 충족된다면?”


하진은 작은 소리로 영애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살아야 하니까 그렇겠지요.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려고…. 사람과 관계가 그렇게 중요해요?”

영애의 반짝이는 눈이 대답했다.

“그렇지. 선택이론과 현실치료에서 핵심 주제가 바로 소통과 단절이거든.”

하진은 얼어붙은 표정을 본 영애는 말을 이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행복과 불행뿐만 아니라 건강과 질병은 다 소통과 단절로 설명될 수 있다는 뜻이거든.”

하진은 눈을 크게 떴다.

“왜? 너무 단순해 보여? 그렇게 간단하냐고?”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리는 단순하고, 단순한 것은 아름답다.’ 이런 말이 있더라고…. 물론 단순하다고 실천이 쉽다는 뜻은 아니지만….”

에어컨 바람이 지나치게 차가웠는지, 하진은 두 팔을 교차해 자기 팔뚝을 손으로 문질렀다.

영애는 리모컨을 들어 온도를 높였다.

그러나 하진은 여전히 팔뚝을 껴안고 있었다.

하진은 드디어 팔을 풀며 말했다.

“아빠하고는 말하기도 싫어요. 나에게 학생이라면 반드시 어쩌고 하는데, 아빠도 마찬가지죠. 돈만 갖다주면 다가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저 보고는 자식이, 어쩌고 하는데, 말이 하고 싶겠어요?”

영애는 미소 지었다.

“그렇겠네. 사실, 선택이론에서 소통이란 단순히 대화가 통하는 것만은 아니야. 소통은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걸 의미하거든. 서로에게 Caring Habits을 해야 소통되겠지? 단절은 그 반대겠고?”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맞는 말도 제 욕구를 무시하면 Deadly Habits인 거죠? 이게 단절을 가져오고요. 단절된 저는 의욕을 잃고요.”

하진은 고개를 숙였다.

“엄마 말을 들으면…. 왜 제가 혼자인 것 같을까요? 언젠가 꾼 꿈에서처럼요. 황량한 들판에 저는 혼자 서 있었어요. 비가 오고 있었고요… 옷도 안 입고. 아무리 둘러봐도.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영애는 하진의 등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하진의 몸이 작게 떨렸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많은 의지가 되었을 텐데…. 그게 엄마나 아빠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단절은 나 혼자라는 절망감을….”

하진의 호흡은 깊고 느려졌다.

영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단절은 심리적인 에너지를 소진해. 에너지가 소진되면…. 생산적인 행동을 하기가 어렵겠지?”

“그래서… 허접한 행동을 하나요?”

‘허접한’이라는 말에 영애는 미소 지었다.

하진은 자기의 행동을 돌아보고 있다.

과거의 행동은 그가 원하는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던 원인을 찾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진이 원하는 것은 결국 ‘더 나은’ 행동이다.

영애는 하진을 지긋이 쳐다봤다.

“그렇겠지? 자해도, 분노도, 약물 사용도…. 결국 에너지를 소진하는 단절에서 오겠지? 사실 이런 증상들은 누군가 잘못되어서도 아니고 병도 아니야. 단지 관계가 끊어졌다는 신호인 거지. 끊어진 관계의 아픔을 견디려는 시도일 뿐이야. 사람은 사람과….”

하진은 영애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연결되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영애는 흐뭇하게 웃었다.

“사람은 빵 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애가 하진을 쳐다보자 하진이 응수했다.

“말씀? 아니, 연결. 다시…. 소통되어야 산다.”

영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건강한 소통은 상대를 바꾸려는 게 아니야. ‘나는 내 행동을 선택하고, 너는 네 행동을 선택한다.’ 이런 내적 통제 관점이 깔려 있어야 가능하겠지?”

“그리고….”

하진은 영애의 입을 쳐다봤다.

“누군가가 ‘좋은 세계’에 들어오면, 서로의 좋은 세계를 받아들이기 쉬워져. 그래서 좋은 세계의 그림들이 풍요로워지고.”

영애는 하진의 눈을 보며 말했다.

“어떤 드라마에서, ‘네 안에 나 있고,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말 들어봤어?”

하진은 웃었다.

“아, 어떤 드라마 아녜요? 엄마가 보던….”

* * *


하진이 집에 오는 길이었다.

짙은 녹색 나뭇잎들은 한 잎 한 잎이 여름의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그 틈에 꺾인 나뭇가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도 집에 가는 길에, 부러진 나뭇가지를 봤었지.

부러진 나뭇가지는 더 이상 자라지 않지.

이미… 죽어가는 중일지도 몰라.

하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

‘네 안에 나 있고, 내 안에 너 있다.’

나는…. 누구와 다시 연결되어야 하나?

어떻게?

※독자에게 드리는 질문

당신은 지금, 누구와 연결되어 있나요?

그 사람은 당신의 좋은 세계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반대로, 당신은 지금 누구와 단절되어 있나요?

예전엔 가까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점점 멀어진 사람은 누구인가요?

다시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인가요?

그와 다시 연결된다면,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함께 지내고 싶나요?

※소통과 단절

소통은 서로의 ‘좋은 세계’ 안에 상대방이 있어 그와 서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관계이다.

소통 관계가 되려면 Caring Habits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욕구를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

단절은 외부 통제를 하려고 상대방에게 Deadly Habits을 사용한 결과이다.

상대방의 욕구를 좌절시키면 상대방의 ‘좋은 세계’에서 빠져나와 서로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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