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선으로, 나의 리듬으로
우리는 경쟁사회 속에 살고 있다.
나 또한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고
빨리 모든 것을 성취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유치원 학예회에서도 나는 예쁘고 완벽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내 속도를 잊고
타인의 속도에 맞추며 살아왔다.
시간을 채우는 것도, 공간을 채우는 것도,
언제난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늘 누군가의 기대와 시선을 의식했고,
그 틀 안에 나를 가두고 살았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괜찮아 보이기 위해 애썼다.
정작 내 안의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몰랐다.
승무원 생활을 하며 전 세계를 다녔다.
화려한 도시의 호텔,
비행기의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많은 장소를
눈으로 직접 보고 발로 디디며 경험했다.
사람들이 가는 도시,
사람들이 찾는 맛집,
사람들이 찍는 사진.
모두 다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디저트류를 안 좋아하지만
뉴욕의 크로넛, LA의 인 앤 아웃 버거,
프라하의 굴뚝빵, 베를린의 슈니첼을 먹었다.
탄자니아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생가에 서 있던 날.
그의 노래조차 모른 채,
그의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것도 모른 채,
그저 거기 가봤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가장 완벽해 보이는 그 장소에서,
나는 내 안의 고요함을 잃어갔다.
반짝이는 세상 안에서 나의 중심은 흔들렸고,
화려한 조명 아래 내 마음의 불은 예고도 없이 꺼졌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속이며 세상의 속도에 맞추고 있었다.
다시 내 마음의 불을 켜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신생아가 첫 숨을 쉬듯, 호흡을 가다듬고
몸의 감각과 흐름을 느끼며 운동을 했다.
얼음을 녹여내듯 명상을 하고,
그렇게 조금씩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만의 리듬이 깨어나자
타인의 박수는 그저 배경음악일 뿐이었다.
그 박수는 나를 흔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감각으로,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의 흐름으로,
나는 나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느려도 괜찮았다.
진짜 내 모습이라면 그걸로 충분했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고
비로소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삶의 일출이 시작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게 돌아가고,
수많은 소리와 빛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소음에 휘둘리지 않는다.
남들보다 늦더라도, 색과 모양이 달라도
내가 원하는 속도와 모습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내 마음의 불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