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없는 사장이라 미안했습니다

비전이 뭐냐는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다

by 세화

사실 지난 일주일 동안 입이 꽉 다물어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브런치 작가 합격의 기쁨도 잠시, 주변에 글 쓰는 일을 알리게 되면서부터다. 갑자기 글을 이어 나가는 게 무섭고 두려워졌다.


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자기 아는 사람도 책을 냈는데, 결국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끝났노라고. 교훈도, 공감도, 재미도 없고 심지어 자기 회사 홍보만 하는 최악의 책이었다는 독설이었다. 그 말이 가슴속에 박혔다.


'내 이야기도 결국 운이 좋았고, 무식하게 질렀다는 뻔한 성공담으로 읽히면 어쩌지?'

(사실 난 아직 성공이라 부를 만한 결과물도 없는데 말이다.)


청년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정작 내 지난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운 좋은 사람의 무용담으로 비칠까 봐 더럭 겁이 났다. 문장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고, 멋진 척 포장하고 싶은 유혹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 무식하게 지르는 게 내 전공이고, 부딪히며 모양을 찾아가는 게 내 경영방법이었으니 그대로 써보기로 했다.


나의 창업 스토리의 시작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본론!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거창한 준비도, 특출난 능력도 없던 한 개인이 맨몸으로 회사를 만들어가며 겪었던,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때로는 부끄러운 민낯의 기록들.


그 민낯이 누군가에게는 정답지보다 훨씬 값진 위로가 되길 바라며, 다시 힘내서 써 내려가 보려 한다.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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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을 한다면, "경영의 첫 단추는 기업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일이다. 기초가 탄탄해야 흔들림 없이 전진할 수 있고, 기조가 분명해야 최단 거리로 목표를 돌파할 수 있다. 결국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명확할 때, 성장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고, 그저 당장 어디인지 모르게 매출이 나는 일에만 달려가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그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듯, 정착지 없는 매출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늘 숨돌릴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었다. 앞이 어딘지 달려나가야하는데 정체된채 매년 연말이면 매출을 맞추느라 급급했다.


흔히 창업 스토리라고 하면 영화 같은 반전이나 대표의 화려한 배경을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겪은 경영은 결이 달랐다. 인생이 풍파를 겪으며 빚어지듯, 대표라는 자리 또한 회사와 직원을 만나 깨지고 부딪히며 제 모양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직원들로부터 더 존경받았고, 지금의 회사가 더욱 탄탄하고 커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미리 정답지를 알고 달려갈 대표가 어디있는가. 미리 나침반을 들고 시작했더라면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친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나만의 기조'는 그 무엇보다 단단하다. 정답지를 보고 쓴 답은 아니었지만,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내 언어로 써 내려간 나는 훨씬 단단해졌다. 그건 기업의 단단함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가장 빠른 길은 아니었을지라도, 가장 '나다운' 길을 걸어왔기에 이제는 흔들리지 않고 직진할 준비가 되었다.


“회사를 차리고 10년 동안, 직원들에게 가장 듣기 두려웠던 질문이 하나 있다.


“대표님, 우리 회사의 비전은 뭔가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가장 난처했고, 입 안이 써졌다.

솔직히 말해, 당시 나에게 비전 같은 건 없었으니까. 당장 내 학비를 벌어 학교로 돌아가는 것, 그저 개인의 목표가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하지만 사장의 개인적인 생존 본능을 직원들에게 '우리들의 공동 목표'라고 내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실, 목표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돈이 필요했다. 학교를 돌아가려고 했지만, 생활비가 필요했고,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운영비가 필요했다.


처음 채용했던 디자이너는 내게 회사의 방향과 비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결국 어떤 답도 얻지 못한 그는 조용히 짐을 싸서 떠났다. 짐을 싸서 떠나는 디자이너를 보며 나는 아주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날 이후, 직원들을 대면하는 것 자체가 트라우마처럼 변했다. '또 누군가 내 밑천을 드러내는 질문을 던지면 어쩌지?' 하는 공포가 나를 짓눌렀다. 나는 '그럴듯한 비전'을 종이에 써서 통째로 외우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의 열등감을 바닥에 있는 자존감을 지우기 위해 노력을 했다. 내 생존 본능을 근사한 경영 철학으로 포장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연기를 준비하는 배우처럼 비전을 외웠다.


그런 못난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곁에 있던 이영미 이사님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에게 그녀는 늘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이야기해주었다. "사람은 저마다의 영역이 있어요. 대표님은 경영과 영업을 잘하면 되는 거예요. 저는 개발자니까 개발과 프로젝트 관리에 집중하면 되고요." 본인은 태생이 개발자라 영업은 꿈도 못 꾼다며, 그래서 본인도 창업을 꿈꾸었지만, 접었다며, 각자의 파트를 맡아 회사를 키워나가면 그게 정답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장장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케어해주었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나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다른 대표들을 부러워며 비교하던 초라한 나의 모습을 보듬어 주었. "대표님은 이미 충분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에요"라는 그 한마디가, 비전을 외우던 연기자를 진짜 경영자의 길로 이끌어준 나침반이 되었다.


창업 후에도 지금까지도 미련은 남았다. 학교로 돌아가려 몇 번이나 편입 시험을 치렀고 합격증도 손에 쥐었다. 하지만 결국 발길을 돌렸다. 냉정하게 계산해 보니, 졸업장 따위가 지금 당장 내 손에 들어오는 이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을까? . 그때의 나는 철저히 냉정해졌다. 나 자신의 '수익'과 '생존'만을 계산기에 두드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경영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창업 초기의 압박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현실의 선택이었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압박은 "내 욕심이 만든 결과"라는 점이 다르다.


예전에는 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비전을 연기하며 발버둥 쳤다면, 이제는 나를 믿어준 사람들과 함께 더 큰 가치를 나누고 싶다는 기분 좋은 욕심이 나를 기대하게 한다.


그 욕심이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고 있고 나는 매일 직원들에게 비전에 대한 이야기 공지를 짦은멘트로 단체 채팅창에 전달한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가장 빠른 길은 아니었을지라도 가장 '나다운' 길을 걸어왔기에, 이제야 나는 흔들리지 않고 직진할 준비가 되었음을.


"자, 이제 진짜 본론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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