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네 살 vs 미운 서른몇 살
오늘 아침에도 전쟁은 시작됐다.
밥 먹으라 하면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노래 부르고,
옷 입히려 하면 벌거벗은 채 방을 활보한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아침을 열고 싶었을 뿐인데,
어째서 매번 올림픽 결승전 같은 체력전을 치러야 하는 걸까.
“엄마, 이거 싫어!”
“나 이거 안 할 거야!”
세상 당당하게 외치는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 아니었나?
도대체 네 마음의 메뉴판은 어디에 있는 건데.
엄마도 좀 알려다오, 제발.
게다가 이건 단순히 밥상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외출하려 하면 비도 안 오는데 장화를 신겠다지,
마트에 가면 꼭 사고 싶은 게 있다며 울고,
잠자리에서는 또 다른 난리가 시작된다.
노래를 불러달라길래 시작했더니,
“엄마, 조용히 좀 해. 지금은 잘 시간이야.”
…그럼 부르라는 건 뭐였는데.
사람들은 말한다.
“다 때가 있어, 금방 지나가.”
맞다, 지나가긴 하겠지.
근데 그 ‘때’가 오늘이고 내일이고 모레 까지라면,
그 순간을 버티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가끔은 나도 헷갈린다.
이 아이가 미운 네 살을 사는 건지,
내가 미운 서른몇 살을 사는 건지.
화를 내고 소리친 뒤,
결국 제일 마음 아픈 건 나다.
아이 울음 속에 묻히는 내 목소리,
그게 오늘의 후회로 돌아오니까.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뭐가 문제냐고?
아마 답은 단순하다.
아이가 아이인 게 문제고,
내가 어른인 게 문제일 뿐.
서로의 세상이 달라 충돌하는 거다.
그 충돌 속에서 아이는 자라고,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우선 오늘은 출근길에 화가 나서 썼다.
근데 쓰고 나니 조금 웃긴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똑같이 소리치고 있을 거다.
“좀 앉아라! 밥 먹어라! 옷 입어라!”
그리고 또 밤에 후회하겠지.
이게 부모의 공식이고,
아이 키우는 집의 일상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우당탕거림 속에서
나는 또 내일을 버틸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