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늘 예고 없이 무거워진다.
정해진 안건이 있었지만,
이야기는 자꾸 옆으로 흘렀다.
누군가는 말을 끊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그 사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회의실 안에 분명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귀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목소리들은 배경음이 되었고,
눈앞의 아이패드 화면은 흰색 배경만 남아
내 마음처럼 텅 비어 있었다.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해야 했던 순간,
순간적으로 정신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익숙한 말.
익숙한, 하지만 부끄러운 순간.
나는 방금까지
회의에 참여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오늘따라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잠은 푹 잤고, 커피도 마셨는데
머리는 자꾸 엉뚱한 곳을 떠돌았다.
방금 전의 대화도 놓쳤고,
회의록 작성도 절반 이상 비어 있다.
‘왜 이러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회의 중, 누군가가 나를 보고 말할 때
내가 그 순간 거기 없었다는 게 들켜버린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창피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더 조용히 있었다.
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반응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회의실 밖에 있었다.
멀리, 멀리 날아가 있었다.
내가 나를 놓치는 순간은
항상 그렇게 조용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바쁘게 돌아가는 회의실 안에서조차
내 마음은 가만히 멈춰버린다.
그리고 그런 날, 나는
괜히 더 지치고, 더 조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