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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3시간, 아무것도 못한 시간

by 게으른루틴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언제나 저녁 8시가 조금 넘었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1호선을 타고 오가는 출퇴근길은

늘 길고, 퇴근 시간은 특히 더 지친다.

하루 종일 쏟아부은 에너지는

지하철에서 이미 다 빠져나가 버리고,

집에 도착했을 땐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고, 물을 마시고.

그런 기본적인 동작조차 하지 않은 채

소파에 주저앉았다.

말 그대로 앉은 게 아니라, 흘러내린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다.

무언가를 본 것도 아니고, 먹은 것도 아니고,

씻지도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이 아깝다거나 후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 작고 서글픈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지쳐야 하지?’,

‘왜 나는 오늘도 아무것도 못했지?’,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을 텐데.’


게임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업계를 상상한다.

신기한 기획, 재미있는 콘텐츠, 트렌디한 사무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운영팀의 하루는

조용히 쌓여 있는 긴장과의 싸움이다.

유저의 문의, 이슈 발생, 갑작스러운 긴급 공지,

수치와 일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느라

마음은 늘 조마조마한다.

그 마음이 집에까지 따라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퇴근 후 3시간은 종종

‘버려진 시간’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하기도 벅차고,

그렇다고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니다.

이 시간은 나에게 쉬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공백이다.

그리고 이 공백 속에서 문득문득

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깨닫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오늘 그런 시간이 있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 같은 직장인들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시간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어떤 날은 그저

무사히 하루를 마친 것만으로도 잘 산 거라고.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당신,

사실은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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