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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보다 무서운 눈치

by 게으른루틴

언제나 그렇듯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나는 자리에 앉아 마우스를 몇 번이고 움직였다.

브라우저를 닫았다 열었다 하며

어정쩡하게 시간을 끌었다.


일은 끝났고 퇴근시간이 되었지만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누군가는 회의 중이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메일을 정리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중 나는,

그냥 퇴근이 눈치 보였을 뿐이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내가 먼저 일어났을 때

누군가의 시선이 따라오는 기분.

물론 아무도 뭐라 하지 않겠지만,

괜히 내가 너무 가볍거나

성의 없어 보일까 봐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몇 분,

아니 몇십 분을 더 앉아 있었다.

퇴근할 수 있었던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키보드에 손을 얹은 채

‘일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게 어쩐지

야근보다 더 피곤했다.

일을 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계속 눈치를 봐야 했던 그 시간이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결국 조용히 가방을 들고

나지막이 인사한 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숨을 한번 깊게 쉬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공간에서

비로소 오늘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일보다 힘든 건,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긴장하며 살아가는 그 감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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