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감정들
모니터에 계속 PPT 창은 켜져 있었고
커서는 빈 슬라이드 위에서 깜빡이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마우스는 손에 쥐어져 있었고
책상엔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공백으로 가득했다.
딱히 딴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끔은 그런 시간이 있다.
집중을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붙잡히지 않고
마음만 저 멀리로 떠나 있는 시간.
눈은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그 너머로 흘러가 있었다.
"이거 오늘까지 마무리해야지."
생각은 그렇게 시작됐지만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손끝이 따라주지 않았고,
몸이 무거웠다.
일어나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셔볼까,
아니면 그냥 앉아있을까.
그 사이 어중간한 공백만 쌓여갔다.
그 상태로 앉아 있다가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시간을 보니 20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20분.
그게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을 뿐인데
온몸이 지친 기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안 했다는 죄책감과
그래도 자리를 지켰다는 안도감이
같이 찾아왔다.
오늘의 나는
마음을 붙잡지 못했다.
그래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던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
그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시간에 대한
핑계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