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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메신저를 지우고 싶었던 날

by 게으른루틴

퇴근을 했는데
몸만 퇴근한 거였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폰에 진동이 울렸다.
익숙한 톤, 익숙한 프로필.
업무 단톡방이었다.

"이거 내일까지 정리 부탁드릴게요."
"이슈 정리해서 보고 부탁드립니다."
"잠깐만요, 이건 어떻게 된 거죠?"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내용도 파악했고, 해야 할 일도 알았다.
그런데 그 순간
너무 하기 싫었다.
답장하는 것도,
읽는 것도,
심지어 그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도.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메신저를 삭제해 버릴까 생각했다.
단톡방 알림을 끄는 게 아니라
그 앱 자체를 없애버리면
지금 이 순간은 조금 편해질 것 같았다.

물론 그러지 않았다.
결국 확인했고,
대답했고,
머릿속은 다시 일로 가득 찼다.

‘그냥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
그 한 마디가
회사 사람들 사이에선 쉽게 나오지 않는다.
빠르게 대응하고,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퇴근 후에도 연결되어 있어야
성실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오늘
나는 퇴근을 했지만
마음은 그대로 붙잡힌 채로 있었다.

휴대폰 화면을 꺼두었지만
그 안에 남겨진 말풍선이
계속 떠 있는 기분이었다.

가끔은
정말 그 메시지 하나가
하루의 감정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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