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유하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익숙했고, 따뜻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따라가게 되는 걸까.
도착한 곳은 오래된 놀이공원이었다.
다 낡은 회전목마,
무너진 벤치,
녹슨 자전거 조형물.
“여기… 이상하게 익숙한데요.”
“그럴걸.
우리 여기 자주 왔었거든.”
유하는 작은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리안, 네가 여길 정말 좋아했어.”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기억이 없는 게 확실한데, 심장이 이상하게 쿵 내려앉았다.
“… 나, 혹시 여기서 뭐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응.
여기서 처음, 나한테 고백했어.”
“제가요? “
“응!
네가 먼저 내 손을 잡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유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하지만 금세, 다시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근데 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되지 뭐.
내가 이번엔 먼저 고백해 줄까?”
그녀는 회전목마 앞에서 내게 두 팔을 벌렸다.
“리안, 나 너 좋아해 아니 사랑해. “
나는 심장이 너무 아파서,
왜인지, 당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저기, 저희…”
“응, 알아. 너한테는 며칠 본 여자겠지
근데 갑자기 이렇게 몇 마디 안 나눠본 여자가
이러니 발랑 까졌다고 생각할 수 있어. “
유하는 조금 쓸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두 눈은 너무 반짝였다.
나를 매일 사랑하려고, 다시 다가오려는 눈.
“근데 괜찮아. 넌 나 몰라도 돼.
내가 다시 너한테 가면 되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른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쿵, 쿵 울렸다.
**
그날 밤, 유하는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낯익은 목소리를 들었다.
“또 혼자 걷고 있네, 유하.”
조용한 골목 어귀,
흑발의 여자가 길게 하품을 하며 다가왔다.
“… 루아.”
유하는 그녀를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이제는 익숙한 이름.
사고 이후, 기억의 틈에서 처음 만났던 사신.
“너, 그때 참 집요했지.”
루아는 웃으며 가로등 기둥에 기대섰다.
“기억나?
네가 식물인간 상태였을 때, 내가 네 의식 속에 들어갔던 거.”
“기억나.
왜 내게 그걸 알려줬는지도, 지금도 궁금해.”
루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특별히 알려주고 싶었어.
보통은 굳이 말 안 해. 거래는 거래니까.”
“왜 굳이 그랬어?”
“너, 그때 나한테 그랬잖아.
‘내가 깨어나지 않아도 좋으니까, 리안의 기억을 지켜달라’고.”
유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리안이 날 기억 못 하는 사랑은…
지금 이 상태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았어.”
“그거 듣고, 좀 웃겼거든.”
루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통은 ‘살려줘’라고 매달리기 마련인데, 넌 정반대였어.”
“결국, 왜 살려준 건데?”
“너도, 리안도.
둘 다 사랑에 미쳐 있었잖아.
단순하게 생각해.
넌 그냥 살아나는 거야.”
“… 지금도 모르겠어.
왜 너는 내게 그걸 알려준 거야?”
루아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음… 나 착한 사신이라서?”
“거짓말.”
“하하, 들켰네.”
루아는 손을 흔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내가 진짜로 착해서, 너한테만 특별히 힌트를 준 거야.
리안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 뭔데.”
“감정은 남겨뒀어.
머리로는 잊어도, 마음은 계속 널 찾게 될 거야.”
루아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조건은 이거야.
리안이 너한테 ‘다시’ 사랑에 빠지게 만들 것.
그럼 저주가 풀릴 거야.”
“… 계속 반복되는 거야?”
“응. 유효기간이 있어.
일요일 자정마다 리안의 기억이 사라져.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
“응 자신 있어 “
루아는 마지막으로 윙크를 하며 돌아섰다.
“행운을 빌어, 유하.
이번에도 넌, 그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을까?”
유하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당연하지.
이번에도, 내가 널 다시 사랑하게 만들 거야.”
**
유하는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시작될 월요일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