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너머의 비행일지-코로나19
우리는 늘 ‘위험’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항공업계가 질병에 이토록 취약한 산업이라는 사실을.
중동이라는 특성상 메르스, 에볼라 같은 감염병 이슈는 종종 있었지만,
코로나19처럼 전면적이고 장기적인 타격은 처음이었다.
그 시절, 서비스직에게 마스크는 ‘금기’였다.
우리는 미소로 소통하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래서 코로나가 막 등장했을 때도, 그저 유행성 감기 정도로 여겼다.
2020년 1월, 남아프리카행 비행을 준비하던 날.
브리핑룸에서 바이러스 이야기가 오르내리자 기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It’s just Flu. Don’t worry about it.”
그때는 그 말이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하지만 두 달 뒤, 하늘은 빠르게 닫혀갔다.
비자는 중단되고, 목적지는 줄어들고, 스케줄표는 텅 비어갔다.
3월 24일. 마지막으로 받은 스케줄은 ‘두바이–세부–클락–두바이’.
서비스도 달라졌다. 미소 대신 마스크, 환대 대신 최소한의 접촉.
‘여행’이라는 단어는 ‘탈출’로 바뀌었다.
그 비행 중 회사로부터 긴급 공문이 도착했다.
필리핀 정부의 입국 제한. 운항 전면 중단.
클락행은 취소되었고, 우리는 두바이로 회항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비즈니스석에 앉았지만, 기내는 유난히 무거웠다.
그 비행이 내게는 4개월 동안의 ‘마지막 비행’이 될 줄은 몰랐다.
스케줄표에는 ‘무기한 대기’,
메일함에는 ‘무급휴가 신청’.
그리고 동료들의 퇴사 소식.
아직도 기억한다.
친한 친구가 보내온 사진 두 장.
사무실에서 유니폼을 정리하며 찍은 모습이었다.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로 들린 첫마디.
“있잖아…”
그 한마디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감축 대상이 된 것이었다.
그날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아. 다시 돌아가도 똑같을 거야. 지난 4년은 충분히 가치 있었어.”
나는 그 말을 잊지 못한다.
완성형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녀를 생각하며 나도 나를 돌아봤다.
달려온 5년, 지친 날도 많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 직장을 얻기 위해 들였던 노력,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
매일의 최선.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믿었다.
예정에 없던 길일 뿐, 그 길을 우리의 방향으로 바꿀 거라는 걸.
5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동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날아오르고 있다.
코로나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처럼 남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건 단지 하늘이 멈춘 날이 아니었다.
우리가 믿어온 하루, 서로의 웃음,
하늘을 나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조용히 닫혀버린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기억한다.
언젠가 다시 멈춤이 오더라도,
그 순간까지 내게 주어진 하늘을 끝까지 품고 싶다는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