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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음을 나누는 비행 중입니다

"비행기 안, 마음이 빛나는 순간들"

by 구름 위 기록자

10년 가까이 비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크루들과 함께 일했다.

그중에는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순간들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장면들이 종종 떠오른다.

‘저렇게 서비스를 해야겠다’, ‘저런 마음이야말로 진짜 승무원의 마음이지’

그렇게 배운 것들이 마음 한쪽에 작은 메모처럼 새겨져 있다.

그중 가장 또렷이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DXB-HND(두바이-하네다) 비행이었다.

일본행 비행은 우리 회사 내에서도 승객의 서비스 기대치가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서비스 단계도 다른 노선보다 훨씬 세분화되고,

브리핑 때부터 크루들에게 미리 숙지가 철저히 이루어진다.

특히 일본 노선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카이세키’라는 일본식 조찬 세트가 제공된다.
그 구성 하나하나에는 전통적 의미와 규칙이 담겨 있어,

제공 방식과 설명 모두에서 세심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날도 나는 퍼스트 클래스에서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완벽하게 플레이팅 된 정찬도,

최적 온도로 제공된 맥주나 사케도 아니었다.


일본 상공에 진입할 무렵이었다.
창밖으로 멋지게 떠오른 후지산이 눈에 들어왔다.

늦은 오후의 노을과 어우러진 후지산은 가히 장관이었다.
나조차도 잠시 멈춰서 그 장면에 넋을 놓았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환한 미소를 띤 일본인 크루 두 명이 조용히 창가 쪽 승객들에게 다가갔다.


“후지산이 너무 아름다워요. 잠깐이라도 꼭 보세요.”


작은 속삭임처럼, 한 명 한 명 승객에게 다가가 안내했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장면, 혹은 서비스와는 별개로 여겨질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분명했다.
자신들이 본 아름다움을 승객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던 진심.


그 노을과 후지산보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마음이 더 빛나는 걸 느꼈다.


또 하나 오래도록 남아 있는 장면은 독일에서 두바이로 돌아오는 비행에서였다.

그날 비즈니스 클래스에는 노부부 한 쌍이 탑승해 있었다.
서비스 중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남편 분이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아내를 위해 열심히 모은 돈으로 비즈니스석을 예매했어요.
3년 전 아내가 암 투병을 시작했고, 이제야 몸이 조금 좋아져서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거든요.”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안도감, 설렘, 그리고 그동안의 긴 시간 동안 품었던 간절함까지.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 크루들은 조용히 뜻을 모았다.
그들의 여행이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기내에서 준비할 수 있는 재료들을 모았다.
케이크와 간식들로 ‘Bon Voyage Special Cake’를 만들어 플레이팅하고,
기내 장미꽃 몇 송이도 정성스럽게 장식했다.

비행 막바지, 우리는 그 노부부를 자리로 초대해 케이크와 함께 카드를 건넸다.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쓴 크루들의 메시지와 작은 기념품도 함께였다.

그 누구도 보여주기 위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진심이었다.

그들의 여행이 행복하길, 그 순간만큼은 모든 고생과 걱정을 내려놓고 웃을 수 있기를.

그렇게 마음이 담긴 서비스는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크루인 나에게도 오래 남는다.


돌이켜보면, 승객이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어떤 ‘순간’을 함께 나눴는지가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나 역시 누군가의 비행 속 작은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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