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은 그날의 항로를 바꾼다
작은 유머는 서비스 업에서 최고의 윤활제다.
특히 나처럼 늘 처음 보는 사람을 마주하는 직업에선,
어색함을 깨는 데 이만한 게 없다.
새벽 4시.
출국 수속에 환승까지,
승객들은 이미 지쳐 있고 예민하다.
이런 비행의 분위기는 탑승과 동시에 느껴진다.
조금만 실수해도,
그날의 텐션은 곧바로 공기처럼
팽팽해진다.
“굿모닝”이라는 우리의 인사에
“내가 지금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굿모닝은 무슨…”
하고 지나치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땐, 나는 살짝 농담을 얹는다.
“좋은 아침입니다.
혹시 피곤하시면, 상쾌한 샴페인 웰컴 드링크로 아침을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그 말에 슬며시 웃음 지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승객이 대부분이다.
그 짧은 웃음이,
아주 긴 비행의 시작을 부드럽게 바꾼다.
재킷을 받을 때도 유머는 통한다.
우리는 항공 규정상, 재킷 수거 시 승객에게 귀중품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이 과정을 귀찮아하거나 흘려듣는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한다.
“혹시… 오늘 저를 위한 팁을 제외한
귀중품은 따로 챙겨주시겠어요?”
그러면 승객은 웃으며 재킷 안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곧장 응수한다.
“팁은 두둑이 넣어놨으니까 조심히 다뤄줘요~”
농담은 동료들에게도 통한다.
한 번은 퉁명스럽기로 유명한 영국인 기장님과
비행한 적이 있었다.
그의 평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정말 말 한마디 한마디에 ‘버터’ 한 방울 없이
툭툭 던지듯 했다.
그날 내가 맡은 일 중에 하나는 기장님의
식사와 티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그는 영국인답게 English Breakfast Tea를 주문했고, 나는 정성껏 티를 준비해 드렸다.
그런데 그가 티를 마신 후, 대뜸 말했다.
“세상에서 마셔본 티 중 제일 맛이 없었어.”
… 분명 더 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툭 쏘아야 했을까.
기분이 상할 뻔했지만, 나는 꾹 참고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역시 한국인인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기깔나게 타는데, 티는 영국인을 못 따라가나 보네요?
그럼 이번엔 기장님이 직접 만들어주시죠.
다음엔
기장님 레시피로 따라드릴게요!”
그러면서 티백과 컵을 조용히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진또배기 티 내리는 법 배우는 날이네요. What a special day!”
그 순간, 절대 웃지 않을 것 같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결국 그는 그 스스로 티를 타 마셨고,
또 나에게 차분히 어떻게 우려내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줬다.
비행은 뜻밖의 부드러운 공기로 마무리되었다.
조금만 어긋났다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적절한 농담은 그 긴장을 눌러주고,
마음과 마음 사이의 간격을 슬그머니 줄여준다.
하늘 위에서 유머란,
공기를 덜 답답하게 해주는 가장 가벼운 방식이자,
가장 인간적인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 우리의 하루도,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부드럽게 항로를 바꿔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