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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그 자리

에피소드 2화

by 구름 위 기록자

그리고 9년이 흘렀다.

며칠 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순간을 다시 마주했다.


비행 전 브리핑에서 퍼서가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1A 손님, 승객 참고 사항 있어요.

지난 두 번의 비행에서 모두 고함을 지르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하네요.

잘 살피고 주의하도록 하세요.”


그는 내가 맡은 구역의 손님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만에 대비해 그의 자리와 사용할 물품들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고, 그가 탑승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괜히 트집 잡힐까 싶어, 최대한 말을 아끼고

조심스럽게 응대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처럼, 그를 상대하는 내내 긴장이 이어졌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아주 나이스했다.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고,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좋은 서비스 고마워요"라고 했다.
그래, 누구에게나 안 좋았던 날이 있는 법이지.
그날이 우연히 전 비행이었겠거니 생각하며

조심스레 마음을 놓았다.

비행은 내 기분처럼 순조로웠다.
곧 런던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나는 갤리에서 마지막 물품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앞쪽에서 무언가 부서질 듯한 소리가 들렸다.

‘쾅! 쾅!’

커튼을 열고 캐빈 쪽을 바라보니, 1A 손님이

화장실 문을 미친 듯이 내려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다가가 말했다.


“손님, 안에 다른 승객이 계셔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런데 그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기다리라고? 넌 그냥 종업원 따위야!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슨 승무원이야?

너 같은 애는 이 일 다시 못 하게 해 줄 거야. 미친**아.”


그 순간, 9년 전 그날이 스치듯 떠올랐다. 그날의 떨림,

두려움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속상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고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말했다.


“고객님, 화장실은 현재 사용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뒤쪽에도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있으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더 격하게 화를 냈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까지 퍼부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나와 사람들이 많은 공간으로 향했다.
그의 무례한 태도가 자연스럽게 다른 승객들의

눈에 띌 수 있도록.

그는 여전히 거친 말을 쏟아냈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쉽게 폭발하는 삶이라니.
얼마나 피곤할까.

심지어 그 짧은 시간 안에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욕을 쏟아내는 그 입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내 곁으로 와 나를 감싸주었고,
그 근처에 있던 승객들마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괜찮으세요?”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처하셔서 너무 대단하세요.”
“그런 사람한테 하루를 허비하지 마세요.”


그 순간, 나는 눈물보다 웃음이 났다.
이제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나 자신이 대견해서.

비행이 끝난 뒤, 그는 공항 경찰에 인계되었고
내게 상처 주는 대신, 함께 타고 있던 많은 이들이 나를 응원해 주었다.

나는 그 상황을 회사에 보고하고 리포트를 작성했다.
그의 무례함에 하루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조심스럽게 내 마음을 정리해 두었다.


나는 그때보다 훨씬 단단해졌고,
그렇게 지금도 조금씩 자라고 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는 내 방식대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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