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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 오늘의 미션을 알려주지

장난의 통과의례를 통과하면, 이건 합격!

by 구름 위 기록자

처음 수습 비행을 하게 되면, 선배 크루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신입을 환영한다.
그건 바로, “수피 신고식”.

아직 이 바닥을 잘 모르는 병아리 크루를 대상으로 벌이는, 약간의 장난이다.
이젠 후배들 사이에서도 “시니어의 첫 비행 장난에는 절대 속지 마라”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대부분은 결국 귀엽게 넘어간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선 얄미울 수도 있겠지만,
팽팽한 긴장 속에 어깨에 힘 들어간 신입의 얼어붙은 얼굴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도 그 안엔 있다.


얼마 전, 이코노미 클래스에 첫 비행을 나온 수피(수습 크루)도 마찬가지였다.
브리핑 시간,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장난 안 속아요! 전 수피 장난 안 넘어갈 거예요!”

하지만 그녀의 당찬 포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사무장님과 기장님은 결심했다. “저 친구는 꼭 속인다.”


기내 점검을 하던 중, 사무장님은 말했다.
“수피, 기장님이 기장실에서 찾으셔. 얼른 가봐.”

그녀는 당차게 기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 큰 비밀이라도 안 듯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인다.
“저기… 기장실 앞 화장실은 진짜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카메라가 있다던데…”

순간,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응. 기장님이 그러셨지? 카메라 있다고.”
“맞아. 보안 때문에 보는 거래~”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나도 봤어요! CCTV! 기장님이 직접 보여주셨어요!”

그제야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화장실에 카메라가 어딨어! 그건 불법이야~ 너 속은 거야!”

기장님은 아이패드에 빈 화장실 사진을 띄워놓고,

그걸 ‘실시간 CCTV’라고 소개했던 것.
진지한 표정으로

“화장실 안에서 기장실 향해서 혹시 총이라도 쏘면 위험하잖아”라는 말까지 덧붙이며.
그녀는 당했다. 완벽하게.


그 모습을 보며 나는 10년 전 내 수피 시절이 떠올랐다.
첫 비행에서 받은 미션은 “팔콘(매)용 안전벨트를 찾아라!”였다.

‘설마~ 팔콘용이 어딨어요.’ 하고 웃으려던 찰나,
사무장님과 부사무장님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거 기내 필수야. 매가 탑승하면 어디에 두게? 좌석 위? 무릎 위?”


정색한 얼굴에 나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 순간부터 온 기내를 뒤지기 시작했다.
선반을 열고, 서랍을 열고, 동료에게 물어도 모두 바쁜 탓에 대답도 못 듣고.


그리고 결국… 나는 찾았다!


작고 단단한 벨트, 작은 고리도 있다! 바로 이거다!

신이 난 나는 퍼스트클래스로 향해, 사무장님께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요! 팔콘용입니다. 이 고리에 매를 끼우면 돼요!”

그 순간, 사무장님은 고개를 숙이고는
“그건 유아용 안전벨트야” 하고는 배를 잡고 웃으셨다.


내가 든 건 보호자 벨트에 연결하는 유아 전용 벨트였던 것이다.

그 고리가 매 한 마리쯤은 딱 들어갈 것 같았을 뿐이다.


그날 이후 내 별명은 ‘팔콘 벨트’가 되었다.


시니어 크루들 사이에는 다양한 전설의 장난들이 있다.
"비닐봉지를 들고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라",
"기내 창문의 개수를 세어오라" 등 기상천외하다.


그 모든 장난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통과한 수피는 이제 더 이상 수피가 아니다.


당당한 크루로의 첫 이륙,

그건 바로 그 농담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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