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가 사람을 살렸다고요?

내가 사는 하루하루는 기적

by 서툰사남매맘


의자 하나가 지켜낸 삶



“우리는 죽음을 상상할 수 있기에,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중에서





올림픽공원 근처의 한 카페.
운동 모임 언니들과 여느 때처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중년 남성이 의자 위로 쓰러졌다.
바닥이 아닌, 푹신한 소파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의식을 잃은 듯 보였고, 얼굴은 잿빛이었다.
근처 손님이 즉시 달려와 상태를 살피고, 나는 119에 전화를 걸었다.
마천동에서 출발한다는 구급차는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 했다.
그 사이, 아저씨는 천천히 의식을 회복했고, 안색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구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언니 몇 명은 밖으로 나가 구급차를 기다렸고,
먼발치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차량은 우리가 부른 구급차가 아니었다.



긴박해 보였는지, 구급대원 한 명이 카페 안으로 달려왔다.

간단한 처치가 끝날 무렵, 우리가 요청한 구급차가 도착했다.
대원들은 혈압을 재고, 걷는 모습을 확인하며 상태를 점검했다.
의학적 판단에 따라 병원 이송은 하지 않기로 했고,
아저씨는 스스로 두 발로, 생수 한 컵을 들이켜고,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아저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쓰러졌다고 했다.
손에는 영화 관련 안내 책자가 들려 있었고,
말쑥한 세미정장 차림이었다.
무슨 일이었을까.
한 사람의 몸을 무너뜨릴 만큼의 소식.



순간, ‘만약’이 머릿속을 스쳤다.
의자가 아닌 바닥이었다면?
누군가 곁에 없었다면?
골든타임을 놓쳤다면?
그날 오후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에 출연한 선우용녀 배우가 떠올랐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돌아온 후,
남은 인생을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는 그녀의 말.
벤츠를 몰고, 호텔 조식을 즐기며, 인생을 만끽하는 삶.
하지만 그 삶은 단지 화려한 소비가 아닌,
삶 자체를 ‘긍정하는 태도’였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가 말한 이 철학은
삶의 모든 국면, 모든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며 살아가라는 말이다.



한때는 욜로(YOLO) 가 유행했다.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지금을 즐기라는 말.
그러나 욜로는 순간을 불태우는 불꽃이라면,
아모르파티는 묵묵히 인생 전체를 비추는 등불이다.



그날 나는
인간의 연약함과 삶의 견고함을 동시에 목격했다.


삶은 생각보다 쉽게 부서지지만,
그 부서짐 앞에서도 다시 삶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더 단단하게 살아낼 수 있다.



삶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균형을 흔든다.
쓰러짐과 깨어남, 의심과 안도, 혼란과 평온 사이에서 우리는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날의 아저씨가 앉았던 푹신한 의자처럼,
우리 삶에도 그런 안전망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쾌락이 아니라,
운명을 끌어안는 담대한 태도일 것이다.



삶의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만이
더 나은 오늘을 선택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동시에 찬란한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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