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임무완수!
“절대 늦지 마!”
이단 헌트(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나는 오늘 하루 이 문장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셋째의 눈과 셋째의 시계,
그리고 나의 시간과 마음이 뒤섞여
정말 영화 한 편 뺨치는 하루였다.
점심은 따뜻했다.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샘과 도반들과 함께 먹는 밥은
그 자체로 치유였다.
말이 통하고, 속이 보이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만난 유일한 ‘중립지대’ 같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 눈이 너무 아파.”
며칠 전부터 말하던 셋째의 말이 다시 떠올랐을 때였다.
처음엔 그냥 알레르기겠지, 생각했다.
어차피 병원 가도 안약만 줄 테고, 이 아이는 안약 넣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이가 스스로 말했다.
“이번엔 넣을게. 병원 가자.”
진심이 느껴졌다.
진료실에서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상처가 많아요. 무의식 중에 한숨이 나왔네요.”
그 말에, 머리가 띵해졌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남편처럼 속눈썹이 눈을 찌른다고 했다.
남편은 고통을 견디며 뽑는다는데, 아이는 무섭고 아프다며 힘들어하고
뽑아도 금방 자란다고. 그래서 아이들은 눈썹을 뽑지 않는다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약과 안연고를 처방받았지만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 아이는 물사마귀도 아빠에게 옮아 고통스런 레이저 치료를 받았고,
치아도 시력도… 결국 엄마 아빠를 닮았다.
이 아이는 우리를 닮아 고통도 유전받았다.
물사마귀처럼, 시력처럼, 조용히 번지는 유전자 속 작은 그늘.
우리를 닮아 약한 것이 미안했다.
어쩐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죄책감에 잠길 틈도 없이
3시 10분, 영어학원이 시작된다.
단 1분이라도 늦으면 “안 간다”는 아이의 선언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나는 마치 이단 헌트처럼 운전대를 잡고 질주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심장은 더 세게 뛰었다.
기적처럼, 3시 9분에 도착.
아이는 말없이 뛰어갔고
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오늘의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를 보내고 나는 곧바로 애프터스쿨 수업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는 막내를 데리러 갔고
킥보드를 타러 놀이터에 가기 전, 처방받은 약을 받으러 약국에 들렀다.
그런데
그 약이 없었다.
몇 달 전에도, 처방전을 받은 병원 근처 약국이 아닌 집 근처 약국에서 약이 없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오늘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집 근처 안과(내가 처방전을 받은 안과가 아닌)가 있는 건물 약국에서도 “없다”고 했다.
결국, 막내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타고
안과 건물 안에 있는, 약국에 도착했다. 약국 문을 닫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다행히,
약을 받을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이젠 탈진 직전이었다.
“이 세상에서 진짜 슈퍼히어로는 누구냐고?
매일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학교 보내고 병원 다녀오는 엄마들이지.”
– 영화 『캡틴 마블』을 보고 어느 엄마가 남긴 댓글
오늘, 나는 그 말이
진짜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했다.
킥보드를 한 손에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지친 엄마와 달리 탈것 덕후인 막내는 지하철 타는 것이 신나는 모험을 하는 것 마냥 싱글벙글했다.
천진난만한 그의 얼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오늘도 임파서블한 하루를 해냈구나.
어제는 ‘내일은 좀 낫겠지’ 했고
오늘은 ‘이 정도면 잘한 거야’ 했고
내일은 또 ‘또 해보자’ 할 것이다.
임파서블한 하루는 지나갔다. 내일도 또, 가능하지 않을 미션이 기다리고 있겠지. 나는 다시, 엄마로 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