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탈출, 하루 알바로 얻은 평화

애를 보느니 밭을 매겠어요!

by 서툰사남매맘

선거 참관인 알바, 두 번째


작년에 처음 이 일을 했을 땐,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고요하고 느린 흐름 속에서 앉아 있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그 지루한 틈 사이로 작은 재미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선거 참관인’이라는 공식적인 명칭과는 달리, 그날 나는 다양한 감정의 파동을 참관했다.

긴장, 초조, 피곤, 웃음, 감사, 그리고 커피 한 잔의 따뜻한 위로까지.


내 자리는 송파구 어딘가의 조용한 투표소.

12시 반까지 도착하라는 문자를 받고, 오전엔 글을 쓰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며 분주히 보냈다. 점심을 놓쳤고, 대중교통으론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지각을 혐오하므로 거금을 들여 택시를 탔다. 12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괜히 성급했다. 12시 반까지 기다릴걸.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근무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번엔 봉투를 선불로 받았다. 손에 전해지는 무게보다, 책임이 더 크게 느껴졌다.

참관인은 총 여섯 명. 돌아가며 눈치껏 쉬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12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고, 5시부터 6시까지가 저녁 시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투표하러 온 가족들도 많았다. 귀여운 아이들을 보노라면 미소가 절로 나왔다. 투표를 마치고 가는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거동이 힘드신 어르신들도 꽤 많이 오셨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잘 보이지도 않고,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실 정도였지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힘든 걸음을 해주신 어르신들이 존경스러웠다.


근처엔 식당이 없어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 김밥과 삼각김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컴포즈 커피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내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붙잡아주었다.


하루가 저물 무렵, 마지막 유권자가 8시에 나타났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당신은 오늘 이 드라마의 엔딩 크레디트이군요.'


투표소를 정리하니 이미 8시를 훌쩍 넘었다.

개표소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이동해야 했지만, 우리 조는 조금 늦어졌다. 서둘러 정리하던 중, 직원 한 분이 중요한 가방을 깜빡하셨다. 그 순간 경찰관이 조용히 말했다.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하위권이에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순위를 매길 일도 아닌데, 괜히 서두르던 우리.

귀엽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했다.


버스에 오르니 모기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나는 박수를 쳤고, 옆에 앉은 경찰관이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요. 격분하신 줄 알았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14인승 학원 버스 144대가 몰리다 보니,

차 안에서 한 시간이나 넘게 기다려야 했다.

묘하게 어색한 버스 안에 작은 농담이 퍼졌다.

그 짧은 순간, 긴 하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지인의 소개로 시작된 아르바이트.

책도, 오디오북도, 유튜브도 없이

그저 앉아 있어야 했던 7시간.

나는 조용히 나라를 위해 기도했고,

그 시간은 아이를 돌보는 하루보다 훨씬 평온했다.

‘아이 보느니 밭을 매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보상은 최저시급쯤 되었지만,

나는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열 번은 외쳤다.

세상에 이런 꿀알바 또 있을까.

다음에도 꼭 하고 싶다. 아니,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안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처럼 보이는 그 속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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