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견인차

시동이 꺼진 날, 이야기가 켜졌다.

by 서툰사남매맘
난생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매우 진귀한 경험인 만큼, 소설가인 나로서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김영하 『여행의 이유』


아침, 막내를 등원시키기 위해 집을 나섰다.
1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시동이 꺼지고 차가 멈췄다. 다시 걸어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출동서비스 번호를 묻고, 견인 요청을 했다. 도착까지 20분쯤 걸린다 했다.

차가 멈춘 곳은 다행히 집 앞 골목. 대로도 아니고 고속도로도 아니었다.
하지만, 차를 완전히 막고 선 상황.



지나가는 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렸다. 나는 차에서 내려 미안하다고 손을 흔들며 사정을 설명해야 했다.

예전 같으면 나도 투덜거리며 우회했을 일이다. 그 상황의 주인공이 내가 되다니.

막내는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그 점이 가장 다행이었다.



간절히 기다리던 견인차가 도착했다. 배터리 문제인가 싶었지만, 기사님은 점검을 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서비스센터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나는 생애 세 번째 견인차에 오르게 되었다.


첫 번째 견인차는, 우리 차가 출고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가족여행을 떠나는 길, 자율주행 기능에 익숙하지 않았던 남편이 톨게이트에서 차를 믿었다.

그러나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톨게이트를 거의 날아들 듯 통과했다.

바퀴 네 개가 모두 손상됐다.
갓길에 겨우 차를 세우고, 온 가족이 조그만 견인차에 몸을 실었다.
여행의 설렘은 놀람과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서비스센터에 도착했을 때, 임시 렌터카도 우연히 아반떼였다.

우리 차도 아반떼였기에, 잠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견인차는, 타이어가 터졌을 때다.
그때도 막내와 함께였다. 첫째 아이 픽업 시간에 늦을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이번엔 간단히 센터만 다녀오면 될 줄 알았다.






그 와중에도 나는 사진을 찍고, 영상을 담았다.
사고조차 ‘글감’이 되어주는 삶.
동료 작가에게 “글감 생겼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그는 내게 “주영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김영하 작가가 공항에서 입국 거부를 당하며 ‘에피소드 하나 생겼군’이라 말했던 일화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기아오토큐 서비스센터 문정점은 만차로 접수 불가.
하남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받아준다 했다. 견인차 아저씨가 원래 지역 외 운행은 하지 않지만, 특별히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견인차는 먼 길을 달렸다.
그 와중에 책 전시회에 제출할 영상을 휴대폰으로 만들어 보냈다.





20분의 이동 동안 기사님은 막내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수동 1종 면허로 몰아야 하는 견인차.
운전면허 7전 8기였던 내 과거가 떠올라 기사님께 자랑처럼 실토했다.

기사님도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번엔 절대 합격 못 하실 거예요.”라는 시험관 말에 오기가 생겨,

꿈속에서도 코스를 그렸고, 결국 8명 중 유일하게 합격했다고 했다.

그날은 눈 내리는 12월 31일. 직접 눈을 치우며 시험을 봤다며, 웃었다.


긍정이 얼굴에 묻어나는 분이었다.
우리 차를 견인하기 전, 기다리는 차들에 손을 흔들며 “죄송합니다”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아오토큐 하남점에 도착해서
분주히 움직이는 기사님께 “감사합니다” 인사를 전했다.

라운지에서 기다리라는 말에 막내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위험하다는 판단에 배려를 더한 안내였다.



기아오토큐 서비스센터 안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시동이 꺼진 11인승 대형차를 중립에 놓고, 직원 열 명이 달라붙어 차를 밀었다.
그 순간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뭐, 큰 문제는 아니겠지. 그냥 수리만 되면 되지.’
너무 안일했다.

잠시 후,
기사는 말했다.

“엔진오일을 교체 안 하셨네요? 오일은 물처럼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건 떡이 됐어요.
엔진이 다 망가졌습니다. 교체해야 하고,
최소 700에서 1000만 원 예상됩니다.”


나는 지금,
또 하나의 이야기를 건지고 있다.
그리고 어쩐지,
다음 이야기는 조용히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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