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짐을 옮겨주고 인사를 한다. 이제 진짜 어른이라도 된 마냥 '알아서 할게'를 연신 반복하며 부모님을 돌려 보낸다. 형편 상 무리였을테지만 딸의 안전을 위해서 학교 앞 큰 도로의 방을 구해준 부모님. 감사하기도, 떨떠름하기도 한 기분으로 다시 문을 연다.
2월, 아직 한기가 맴도는 방 안에 이불을 꺼내 폈다. 오늘 당장이라도 잠은 자야하니까. 쌓인 짐은 바라보기만 해도 무기력해져서 몸을 뉘어버린다. 침대가 있는데도 괜히 찬 바닥에서 양팔을 허우적거린다. 월 58만원의 돈으로 빌린 이 공간은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는다니. 태생이 예민한지 누군가 말 걸어 오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는 유래없는 안정감을 느낀다. 딱딱한 바닥은 빠져드는 늪이 되어 나를 빨아들인다. 이토록 어색한 공간이 나를 집어삼켰다.
수저 한 벌, 물 한 병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라 몸을 일으켰다. 다행이도 집 근처에 다이소가 있는 '다세권'이기 때문에 차가 없이도 양손 가득 물건을 가져온다. 화장실 청소도구, 칫솔, 치약 빨래망, 세제, 수저, 컵, 물티슈, 휴지, 디퓨저, 먹을 과자도 하나 집으니 믿을 수 없는 숫자가 계산대에 찍힌다. 분명 전부 필요한 것 같기도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한 1,000원의 물건들은 쉽게 8만원이 된다. 전부 필요할거라고 스스로 되뇌며 낑낑 집에 끌고 왔지만, 나는 냄비받침을 구매한 사실조차 잊고 오늘의 집에서 9,000원짜리 받침을 구매하게 된다.
저녁 시간, 짐 정리에 지쳐 먹기 귀찮음이 몰려오지만 고민하다가 참치 캔을 깐다. 다이소에서 햇반, 참치캔도 김도 팔더라. 김에 밥과 기름 뺀 참치를 올려먹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실 아직 상이 없어서 짐을 옮긴 박스에 올려 먹었다. 이정도면 부귀영화가 아닌가. 앞으로 이 집에서 먹을 음식들이 기대됐다. 요리는 전혀 하지 못해서 화려한 자취생 로망 요리를 차릴 생각은 1%도 없지만, 데우고 돌리는 조리정도는 마이너스 손의 대표주자인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배달음식을 소분해서 다음 날에도 먹을 수 있는 것에 환호한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니! 다음 날 데워먹을 수 있다니! 기숙사에 살며 혼자 닭발 세트와 김치찜을 먹을 수 없어 얼마나 슬펐는가. 주방과 냉장고는 이것으로 역할을 다했다.
사람 한 명으로는 온기를 채울 수 없는 공간. 온기가 없어서 조금 더 포근한 공간. 23살인 내가 혼자 살 수 있을까, 매일 무서운 뉴스가 올라오는 세상에서 조금 걱정되지만 소중하고 감사한 나의 공간을 살아가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