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by 사피엔




1.


<이기적 유전자> 초판 서문에서 도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생존 기계다. 즉, 우리는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자다.”



이 극단적이고 냉정한 표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밀려드는 강한 거부감.

그의 이론은 전혀 와닿지 않았고, 글을 읽고도 도무지 뭘 읽었는지 모를 만큼 멍한 상태로, 결국 졸음에 조용히 침몰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간명하고도 잔인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가 만든 생존 기계라는 것.

그 유전자는 성공한 시카고 갱단처럼, 수백만 년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으며, 그 생존전략의 본질은 바로 ‘비정한 이기주의’다. (p.47)



우리는 DNA라 불리는 동일한 자기 복제자를 위한 운반자일 뿐이고,

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물고기는 물속에서, 심지어 맥주잔 받침에 붙어 있는 벌레조차도—그 나름의 방식으로 유전자를 유지한다. (p.79)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일생 동안 쌓은 지혜와 지식은 단 하나도 유전되지 않는다.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일시적 매개체’일 뿐이다. (p.83)




“어떤 진실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도킨스는 그렇게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한때 그 진실을 외면했다. 단순한 뇌, 복잡한 심경, 그래서 결국 포기.

무엇 하나 정리되지 않았던 독서 경험. 그래서 몇 년이 지나 다시 책을 꺼냈고, 조금씩 필사하면서 되뇌기 시작했다.



그의 문장은 살아남은 유전자가 수십만 번 갈고닦은 생존의 증언처럼, 불편하고 건조하다. 그렇기에, 설득력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한 줄을 덮고 누워 생각에 잠겼다가 스르륵, 잠에도 잠겼다가.... 쉬고 싶지만, 밀린 일상 일이 태산.

그 사이, 태산보다 높이 쌓인 허무와 권태, 무의미한 일상의 스트레스가 겹쳐 또 눈이 떠진다. 시시각각 생명을 위협하는 도전들이, 하루하루가 생존투쟁인 이 비루한 일상에 더해지기라도 한다면, 유리멘탈인 나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생존 자체가 불가하겠지.



그래서 세상이 "법"과 "물질적 풍요"를 전제로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잠시 기대어 안도한다. 그러나, 이게 다인가.

참으로 덧 없고, 공허하지 않은가. 떠도는 상념은 언제나 단 하나의 귀결에 이른다. "행복"



언젠가 일주일 분 세로토닌제를 추가로 처방받고 의사에게 따져 물은 적이 있다.


"왜 1도 즐겁지 않죠?"


그때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다.


"즐거우려면, 마약을 해야겠죠"



즉각적인 기쁨이나 지속적인 행복은 마약 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그의 한 줄 명언. 통쾌하고, 쓸쓸했다.



그래서 내 이기적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해 그 운반자인 나를 다시 이용했고, 나는 유전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픈 마음을 붙들고 하루를 기록하며, 이렇게 되뇌어 본다.



반드시, 건조할 것.



2.



그런데 정말 우리는 그렇게 단순한 기계일 뿐일까.



내 안에는, 유전자의 이기적 전략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다. 기계가 느낄 수 없는 얇고 선명한 아픔, 정체 없는 서운함, 그리고 말 한마디에 요동치는 자존감.



며칠 전,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가 있었다. 기대와 반가움은 잠시, 그녀의 첫마디는 이랬다.



“야, 예전에 네가 빌려준 그 책 뭐였지? 다시 좀 빌려줄 수 있어?”



그 순간, 나는 책보다 먼저, 내 존재가 호출된 건지, 내가 가진 무언가가 호출된 건지 혼란스러웠다.

씻지도 않고 누운 그날 밤, 가슴 한복판에 어쩔 수 없이 생긴 얇은 생채기 하나가 조금 쓰라렸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른 기억들을 불러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들, 사소하게 지워지는 존재감,

내가 아닌, 내가 가진 것으로만 호출되는 순간들.



이건 내 안에만 있는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복제해준 감정이기도 하다. 또, 어쩌면 나도 무심히 누군가에게 전달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감정은 퍼진다. 마치 유전자가 몸을 통해 복제되듯, 감정은 관계를 통해, 기억을 통해, 무심한 말 한마디를 통해 복제된다.



그것이 바로, 감정의 밈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사랑보다 효율을, 관계보다 목적을 앞세우는 삶 속에서 감정이 오염된 채 확산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오염된 감정은 또 다른 관계에 전달되고, 또다시 복제된다.



도킨스는 ‘밈’을 문화의 자기 복제 단위라고 했지만, 나는 감정도 일종의 밈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무례, 누군가의 상처, 누군가의 따뜻함조차—

그 자체로 하나의 정서적 유전자처럼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다시 퍼져나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유전자가 아니라 감정으로 복제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 누구도 몰랐던 방식으로, 한 줄의 감정 밈을 조용히 기록한다.



반드시, 건조할 것. 그러나 결코, 무감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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