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데 3년이 걸렸다. 절반쯤은 버티는 싸움이었다.
칼 세이건의 모든 책들은 마치 나를 품어주는 우주 같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필사했다. 그의 책에서 나는, 나란 존재를 우주의 먼지처럼 감각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책들은 시대와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 속에서도 기어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의 글에 밑줄을 그으며 넘긴 새벽이 숱하다.
그런데 <총, 균, 쇠>는…그냥, 읽어냈다. 요약만 남았고, 감정은 붙지 않았다. 시간이 좀 흘러, 한 번 더 읽었다. 그런데도 감동까지는 닿지 못했다. 아마 책이 아니라, 내가 부족했던 걸지도.
1972년, 뉴기니 원주민 얄리가 묻는다.
“왜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켰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질문에 평생을 바쳐 답한다. 인종이 아니라, 지리와 환경이 문명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총, 균, 쇠.
그 모든 기술은 우연히 좋은 땅에 먼저 닿은 자의 것.
가축과 농업의 조건을 갖춘 유라시아에서 잉여가 생기고, 군대가 만들어지고, 병원균이 진화했다.
그러나 나는, 이 긴 논증에서 단 한 문장을 기다렸다.
“그들은 우월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을 뿐이다.”
잉카와 스페인의 비극적인 만남, 총을 든 170명이 수천 년 문명을 무너뜨린 이야기. 문명은 그렇게 잔인했고, 그 잔인함의 출발이 운이라는 사실은 더 잔인했다.
다이아몬드는 이것을 ‘진실’이라 말했고, 나는 그 진실을 ‘지루하게’ 읽어냈다. 나의 감정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도 이 책 안에 정착하지 못했다.
<뇌, 생각의 출현>은 비록 다 읽지 못했지만, 내 감정이 박힌 문장들이 여기저기 살아 있다. 그런 책은 흔적이 남는다. 그런데 <총, 균, 쇠>는 내 손길이 머물 자리가 없었다.
‘알았다’는 안도감은 있었지만, ‘감동받았다’는 기억은 없다. 그래도, 이 책. 읽었다. 그것만으로 이 기록은, 내게 유일한 증명이다.
불평등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총, 균, 쇠>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종족의 능력’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가 택한 렌즈는 오로지 지리와 생태다.
이 점에서 유시민이 <역사의 역사>에서 소개한 토인비의 관점, 즉 ‘도전과 응전의 패러다임’과 대조되면서도 맞닿는다.
비판도 존재한다.
‘환경결정론’이라는 틀에 지나치게 기대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우리가 마주한 질문에 최초로 정면 돌파했다.
“왜 유럽이었는가?”
그 물음에 응답하려 한 최초의 대중서사로서,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하다.
앎의 기쁨과 문명의 착각
처음 이 책을 읽을 땐, 반복되는 논증에 지쳐 여러번 책을 덮고, 기계적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다시 펼쳤을 때, 그 안엔 인류사의 뼈대를 이루는 통찰이 빽빽했음을 깨달았다.
수렵채집이 인류 역사 99%였다는 사실 앞에서,
지금의 우리는 아주 짧은, 아주 특이한 시기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우리는 우연히 문명의 정점에 서 있을지 모른다.
석기에서 우주선까지 왔지만, 그게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진보일지, 파멸일지. 그건 지금도 진행 중이므로.
기껏해야 백 년을 사는 인간.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모르고 산다.
그래서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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