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파는 시지프, 고층 계단을 오르다

by 사피엔



오늘도 우리는,

바위 같은 생계를 짊어진 채 절벽 대신 고층 건물 계단을 오른다.

"파이팅!"을 외치며.

( 혹시 안그런 사람도 있을까봐 짜증부터 난다.)



그 장면은 현대인의 표상인 동시에 시지프 신화에 대한 지독하게 슬픈 패러디다.



나 역시 김밥 마는 정성과 바위를 미는 수고로, 수업을 준비. 중간고사는 끝났고, 이제 다시 진도를 '팍팍' 뺄 예정이었다.



그런데ㅡ

작은 소동 하나, 들썩이는 아이들, 무너지는 수업 리듬. 결국 나는 하루를 온통 말아먹은 기분으로 퇴근했다.



이런 날엔 늘, 캔맥 한 묶음이 손에 들린다. (될대로 되라, 싶은 날엔 살찌는 안주들까지 듬뿍)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날도 고단하고 허무해서, TV 앞에 소주잔을 놓고 앉았다.



천길 아래로 가라앉는 내 마음을 여섯 살 어린 아들이 눈치챘던 걸까. 그저 말없이 내 곁에서 장난감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그때 TV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고, 나는 술잔을 들며 나직하게 말했다.



"엄마도 아프리카 같은데 가서 봉사나 하면서 살고 싶다."



아들이 고개를 들어 얼핏 술 잔을 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그렇게 술 마시면, 엄마가 봉사 받아야 될 걸."



헉~ 천잰데?

그날은 똑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밀며 산다. 정확히는, "지치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그게 직장일 수도 있고, 육아, 공부, 장사, 누군가에겐 글쓰기일 수도 있겠지.



나는 오늘따라 "잘 안 되는 수업"을 밀기 위해 애썼고, 이러다 이 무의미한 노동 현장에서도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에 어금니를 깨물었다.(하.......젠장)



오늘도 어제와 같은 루틴. 식탁 위의 캔맥. 그리고 넷플릭스. TV를 없앤지 오래됐다. 요즘은 무엇이든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고, 틀어만 놓아도 시간 순삭인 넷플릭스가 있으니까.



다만 그 편리함 속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것 1순위가 단언컨대 책이란 사실이 무척 아프고 쓸쓸하다. 나조차도 이렇건만, 글을 찾아 읽지 않는 현실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



읽히지 않는 시대, 나는 그 틈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정답을 팔고, 시험 성적을 보장하는 기술자 같은 국어강사 말고, 하루치 감정이 눅진하게 담긴 한 문장,

어떤 시구에 울컥하는 마음. 그것들을 들고 수업에 임하는, 진심을 전하는 국어 강사. 그저 말의 결을 읊는 사람으로,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책갈피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꺼내 읽고 싶은 문자 메시지가 되는, 언어의 심장을 두드리며 이어가고 지켜내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정말이지, 아직도 이런다.)



그러나 오늘 나는 읽지 않는 시대를 견디는 국어 교사의 품위도, 진심도 잠시 접겠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처절해진 국어 강사가 있을 뿐.






김밥 파는 시지프에게 단골이 생긴다면, 그의 바위는 조금 더 가벼워질까?



내 브런치에도 그런 단골이 생겨서, 오늘 같은 밤,

그저 안부 한 줄 건네준다면 ㅡ

온몸으로 밀고 온 바위의 무게가 잠깐이라도 가벼워질 것 같다.










#시지프의하루 #생활인의존재론 #단골의위로 #불편한사피엔스를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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