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한 잔, 고전 한 입

도천의 물을 마주한 밤에

by 사피엔


도천은 오래전 강이지만, 오늘 밤도 나는
그 물가에 앉아 있다.


얼마 전, 서랍을 정리하다, 아주 오래된 다이어리를 하나 꺼냈다.

맨 앞장에 적힌 글자가 나를 멈춰 세웠다.


도천지수(盜泉之水)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는다."

공자가 산동성 일대를 지나며,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도(盜)'라는 글자가 들어간 샘물은 마시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


뜻은 명료하다. 형편이 어려워도 부정한 짓은 하지 않는다.

눈앞의 유혹이 아무리 강렬해도, 마음을 팔아 잇속을 챙기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나는 특별히 공자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유교적 가르침에 충실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뜻대로 되지 않았던 나날들이, 나를

'나답게 단속하려는 문장들'로 이끌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공자왈, 맹자왈이라니.


공자 죽은 지가 언젠데

도천지수란 말이냐.

내 인생에 무슨 대단한 유혹 같은 게 있어서

절대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하듯 눌러쓴 글자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대체,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고리타분했을까?

(공자는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할 수만 있다면 난 그 물에 맥주라도 타고 싶다.)


그밖에

책에서 옮겨 적은 짧은 구절들. 곳곳에 신문 칼럼을 오려 붙인 흔적들.

그리하여 탄생한, 한 편의 생존 기록이자 실존의 자화상.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ㅡ 위화, <인생>
"행복을 과장할 때 그는 이미 행복의
끝자락을 지난 것이다."
ㅡ 박완서, <그 남자네 집>
"외로워서 그리운 게 아니라, 그리워서
가만히 외로워져야 사랑이다."
ㅡ 김별아, 산문 중에서


부디, 오랫동안 외롭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이 일기장에 눌러 담은 답 없는 질문들은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홀수'로 존재하는 내게 흐른다.


누군가는 그걸 '근원적 고독'이라 부르겠지만,

내게는 다반사로 삼아 살아내야 하는

현재 진행형 과제라 서글프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규범 안에서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순치되어 살아간다.

길은 언제나 규정된 레이스 위에 놓여 있고,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삶은 불안정해진다.


잘 도정된 채로 정해진 룰 안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이 과연 잘 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외줄 위에 매달린 아슬아슬한 인생에선 벗어나고 싶다.


가끔, 성공커리어를 축적하며 자기 이름을 공고히 다져가는 지인을 멀리서 지켜본다. 그녀와 대조적으로 늘 쪼들린채 아무도 모르게 희미해져 가는 내 삶은,

과연 '삶'이라 할 수 있는지?


고작 꿈꿔보는 일탈이란 퇴근길의 맥주 한 캔,

그마저도 다짐 하루 만에 금주를 깨뜨리는 수준이라면.


술을 사는 순간만큼은 바란다. 그녀뿐 아니라

전 지구인의 오늘이 다 똑같이 남루하고

지긋지긋하였길.

그래야 나의 이 일탈이 변명 없이 이해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다시 떠오른 말. 도천지수.

도천의 물을 마주한 이 밤, 술 한 잔은 넘겨도

외로움에 꺼억꺼억 넘어가지는 않겠다고.


사려 깊은 언어 하나에

뒤엉킨 생각을 정리해 본다.

마음을 헤집던 감정들은 맥주 한 잔으로.


그리고 또 다른 장면.

아들의 조언이 떠오른다.

"엄마, 요즘엔 2030이 좋아할 만한 책을 읽고

써야 블로그 유입이 늘어.

<상처 없는 밤은 없다> 같은 거,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 같은 감성."


하지만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는 <종의 기원>을 읽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밑줄 긋는 사람이다.


아마도 나는 원래부터 이렇게

고리타분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의 공복 또한 내가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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