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윈과 월리스 사이에서 <각성노트 1>
브런치 입성 2주 만에 나는 알게 됐다.
여기선 글을 쓰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좋아요를 누르고 다니는 방정맞은 손가락들이 메인에 뜬다는 사실.
콘텐츠를 읽는 소비자는 없고, 텍스트에 전략을 달거나, 나도 작가랍시고 떠드는 아줌마 아저씨들만 넘쳐난다는 사실.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조용한 ‘경쟁’의 장소였다.
누가 더 자주, 더 많이, 더 눈에 띄게 손을 흔드느냐가
생존과 존재감을 가른다.
어쩌면 나는, 찰스 다윈보다 월리스에 가까운 존재였을지 모른다.
다윈은 부유한 가문과 시간의 여유를 바탕으로
진화를 숙고했다.
그는 틀릴까 두려워 20년을 침묵했고,
그 두려움을 견디게 해준 것은 ‘가난하지 않음’이었다.
반면 월리스는 달랐다.
그는 열대우림을 헤매며 생계를 위한 수집을 했다.
논문을 망설이지 않고 보냈고,
그 속엔 그의 시선, 그의 분투, 그의 먹고사는 고민이
온기처럼 스며 있었다.
둘의 이론은 닮았지만,
둘의 삶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역사는 늘 ‘먼저’ 말한 자의 것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쥔 사람은 다윈이었고,
그 그림자를 만드는 조명 뒤에 월리스가 있었다.
브런치도 다르지 않다.
이곳에선 읽히는 글보다, 노출된 손가락이 승자다.
반짝이는 콘텐츠보다, 스쳐가는 관계가 위계를 만든다.
나는 알고 있다.
‘콘텐츠로 소통하는 플랫폼’이라는 말 뒤에
당신들도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남고 있는지를.
읽히지 않아도 누군가의 손가락이 자주 움직이기만 하면,
그건 곧 ‘활성화’라는 지표로 남으니까.
그러니 브런치팀에게도 한 마디 남긴다.
당신들도 살아남으려 용쓰는구나.
그래, 힘내라.
이 구조를 만든 죄는 있지만, 당신들의 사정 또한 안다.
우리는 모두 플랫폼의 동물이며,
이 생태계 안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월리스들일 뿐이니까.
오늘, 수업 없는 심심한 금요일 저녁에
더 이상 관찰할 것도,
매력을 느낄 것도 없는
이 세계에 손을 흔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