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너머, 감각의 첫 단서 (사랑노트 2)

불편한 사피엔스를 위한 사랑노트 2

by 사피엔


미결된 감정의 첫 단서


1.


발화


세나는 지금도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공기 온도, 벽에 붙은 시계 소리,

그 남자가 처음 자신을 불렀던 호흡의 길이까지도.


그건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충돌이었고,

호감이 아니라 증상이었다. 이상하게 열이 났고,

몸이 무거워졌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그녀 자신보다 먼저 그녀를 알아보는 눈빛을 가졌다.

그 눈빛이 세나를 침투했고, 그녀는 중심을 잃었다.


그날 이후 밤마다 이상한 꿈을 꿨고,

자꾸만 현실의 도덕과 욕망을 계산했다.


그는 유부남이었다.

네모 안에서 살아가는 동그라미였다.


세나는 자신이 뾰족한 세모라는 걸 알았다.

닿으면 다친다. 닿으면 다친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2.


접촉


"괜찮으세요?"


순간, 세나는

몸보다 숨이 먼저 멈춘 걸 느꼈다.

구두의 굽이 꺾이며 균형이 무너지던 바로

그 찰나,

그녀보다도 먼저, 어떤 낯선 온기가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의 손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안정감이었고,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들을 일시에 깨워낸 어떤 힘이었다. 알 수 없는 위험한 힘.

어쩌면 그날, 그녀는 그의 손에 붙들렸다기보다 존재의 방향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괜찮으세요?"

짧고 낮은 목소리.

그녀를 일으켜세운 시선은 그러나 그녀에게 있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답을 가늠할 수 없는 그 눈빛은, 치명적인 '질문'으로 그녀에게 새겨졌다.

돌아가는 발걸음에도 망설임이 없었지만, 그 잔상을 떠올리게 된 날부터 세나의 평형감각은 어딘가가 틀어지고 있었다.


그 남자,

동근.

이름보다 먼저 마음이 부른.

그의 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던 그 무심한 온기.

익숙하지 않았기에 더욱 강하게 남은 감각.

그녀는 그것을 자꾸 곱씹었다.

기억이라기보단, 하나의 언어 같았다.

혀끝에 머물던 온도의 잔향.


몇 초였을까. 너무 짧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고, 너무 강렬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시간.


그날 이후 세나는

누가 등 뒤를 지나가기만 해도 순간적으로 긴장했고, 가끔 누군가 스치기만 해도 그의 손을 떠올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일상의 일부였을 뿐인 한 장면이

왜 이토록 오래도록 감정의 진원처럼

흔들리는지.





3.


사로잡힘


며칠 내내 세나는 그 남자, 동근만 생각했다.

돌아서던 옆 모습, 그의 걸음, 어깨의 너비,

잠깐 스친 손의 기억.

그 모든 사소한 요소들이 그녀의 하루를 덮어버렸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힌 자신을 인정했다.

딱하고, 좀 한심하고, 무엇보다 위험하다고.


사랑.

그 단어조차 멀게만 느껴졌던 긴 세월.

아이를 키우는 동안,

그녀는 살아야 했고, 견뎌야 했으며.

무사히 버텨야만 했다.


마음은 닫혔고, 몸은 수단이 되었으며, 감정은 사치였다.


그런 세나 안에서 지금,

세포들이 하나둘 각자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심장은 심장대로 두근거리고,

피부는 피부대로 그 손을 기억했고,

머리는 도덕을 외치며 혀는 그 이름을

불렀다. 머리와 혀 사이, 그녀는 한 인간의 윤리적 파열음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그 끌림을 통제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결정도, 타협도 아니었다.

그저 너무 오래 참은 감정이 조용히, 자기

방식대로 문을 열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어쩌면,

자신을 다시 살아보려는 내면의 각성이었고,

온 우주가 그녀를 위해 베풀어준,

은밀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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