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전쟁터
여섯 살, 내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집은 전쟁터였다.
아버지의 폭력이 첫 번째 전투였다면, 오빠와의 관계는 두 번째 전장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작은 적이었고, 더 무력한 희생자였다.
집엔 배다른 오빠도 함께 살았다.
나와 11살 터울. 그 나이 차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새엄마라 낯설고 불편했을까?
아니면 엄마에게 쏟아지던 아버지의 폭력성이, 고스란히 오빠에게로 스며들었던 걸까?
폭력의 유전자는 피보다 빠르게 전염되는지도 모른다.
오빠는 자주 나를 때렸다. 언니보다, 나를 더 많이.
가장 약한 자에게 향하는 것이 폭력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오빠에게 쏟아냈고, 오빠는 그 미움을 나에게 되돌려주었다.
증오의 연쇄작용. 우리 가족은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완벽한 고리를 만들어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생이었던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책상 위에 올려둔 자기 물건을 내가 만졌다는 이유로 나를 멱살 잡아 벽에 내던졌다. 그때 나는 겨우 여섯 살이었다.
머리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 진짜로 별이 보였다. 만화에서 표현하는 별이 보인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그것은 순간적인 빛의 잔상이었을까, 아니면 뇌가 충격을 받아 만들어낸 환각이었을까.
나는 오빠방 벽지 색을 아직도 기억한다. 40년이 지났지만, 그 벽지색은 아직 내 눈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연한 베이지색에 희미한 꽃무늬.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선명한 색.
오빠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마치 맛을 들인 것처럼, 혹은 폭력 자체가 중독성 있는 약물처럼 그를 사로잡았다.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나고 집을 나갔던 오빠는,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담장을 넘어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도 없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갈겼다.
여섯 살. 여리디 여린 내 얼굴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의식 같았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나의 피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터진 피부 사이로 피가 흘렀고, 언니는 울면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때 집 안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어떻게, 어린아이 하나가, 얼굴 피부가 터질 정도로 그렇게 맞아야 했던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폭력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 그저 힘의 불균형만이 존재할 뿐.
엄마는 한참 뒤 집으로 돌아왔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경악했다.
겁에 질린 나는 엄마에게 작게 속삭였다.
"엄마, 어디 갔다 온 거야... 나 너무 무서웠어."
아프다는 말 대신, 나는 무섭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픔은 잠시지만, 공포는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여섯 살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미, 피비린내 속에서 또 다른 가족에게,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다.
육체적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조금씩 사라지는 죽음이었다.
모든 폭력의 희생자들이 겪는 그런 종류의 죽음.
오빠가 언니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사실도 훗날 나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언니보다 나를 더 때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익시온의 수레바퀴가 무서운 건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히, 끝없이, 똑같은 자리에서 돌고 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멈출 수도 없고, 오직 그 자리에서 고통만 반복한다.
더 잔인한 건, 이 수레바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 내면에서는 매 순간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아무도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채로.
폭력의 심리는 복잡하다.
가해자는 자신의 죄책감을 또 다른 폭력으로 덮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골목길에서 나눈 소원
여덟 살 언니와 여섯 살 나. 우리는 골목길을 걸으며, 오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말. 하지만 그 말은 우리가 찾은 유일한 출구였다.
그 나이, 그 시절, 우리는 너무 작았고 겪지 않아도 될 잔인한 학대를 가족에게서 겪고 있었다.
오빠가 죽으면, 우리의 고통도 끝날 거라고 믿었다.
그건 막연한 바람이었지만, 우리 둘에겐 그 바람밖에 없었다.
무섭고 서글픈 이야기지만, 그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오빠가 죽지 않으면, 우리가 계속 죽어가야 했으니까.
어른이 된 지금, 그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무너진다.
어린아이들이 다른 아이의 죽음을 바랄 만큼 절박했다는 사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깊은 곳에서 부서져 있었다는 증거다.
아버지는 엄마를 때렸지만, 우리를 직접적으로 폭행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우리는 아버지보다 오빠가 먼저 죽기를 바랐다.
참 씁쓸한 가족 사다.
아무리 어려서 표현력이 부족했다 해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자연스럽게, 너무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폭력 가정의 산 증인이 되어버렸다.
그 시절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빠는 죽지 않았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 집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집에서, 우리의 어린 시절은 매일 조금씩 죽어갔다.
그리고 그 죽음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우리 안에 남아있다.
인간의 기억은 이상하다.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흐릿해지는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선명하게 남는다.
벽지의 색깔, 피비린내, 골목길에서 나눈 소원.
그것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마치 어제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