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눈의 비밀
오빠의 오른쪽 눈에는 고양이 눈처럼 하얀 표식이 있었다.
홍채 위로 흐르는 희미한 흉터, 흰 구름이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그 표식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우리 가족 역사의 상징이었다.
그 눈빛이 우리를 더욱 겁먹게 했다.
마치 동화 속 마녀의 눈동자처럼, 오빠의 손이 다가올 때마다 그 하얀 표식이 더 밝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건 내 공포가 만들어낸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린 내게 그 눈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폭력의 첫 번째 희생자
오빠가 친엄마와 살던 시절, 아버지와 그 여자는 자주 싸웠다고 한다.
우리 집의 폭력은 오래된 유산이었다.
마치 대대로 물려받는 병처럼, 아버지의 세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흘러온 강물 같았다.
그날도 또 싸움이 벌어졌고, 오빠는 밥을 먹다 말고 피를 흘리며 울었다.
밥상 위에 있던 사기 그릇이 깨졌고, 파편이 오빠의 눈으로 날아들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깨진 그릇 조각이 가장 연약한 곳을, 가장 중요한 곳을 찾아냈다.
그 어른들은 싸우느라 병원에도 제때 가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분노가 자식의 상처보다 중요했다.
절박함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세계에서, 오빠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피보다 자신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더 급했다.
그렇게 오빠의 오른쪽 눈동자엔 상처가 남았고, 시력도 함께 나빠졌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서야 깨달았다. 오빠도 나처럼 가족에게 버려진 아이였다는 것을.
상처가 만드는 괴물
자식이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그 부모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갈 생각보다, 서로를 찢고 부수는 데 더 급급했다.
그게 어떻게 사랑이고 가족일 수 있었을까?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건 그냥 미친 잔혹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그렇다면 오빠가 나에게 한 일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도 상처받은 아이였다고 해서, 다른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상처받은 사람이 반드시 다른 사람을 상처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딛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오빠의 상처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선택까지 용서할 수는 없다.
대물림의 고리
우리 집에서는 모든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낳았다.
오빠의 눈이 다쳤듯이, 그의 마음도 다쳤다.
그리고 그 다친 마음은 다시 나와 언니를 다치게 했다.
폭력은 그렇게 대물림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오빠는 선택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맞는 엄마를 보며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당한 고통을 다른 누구도 겪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빠는 다른 길을 택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더 약한 존재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길을.
지금, 여기서 묻는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묻는다.
오빠의 눈 속 하얀 표식을 보며 연민을 느꼈던 그 순간이 옳았을까? 가해자의 상처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과연 의미 있는 일일까?
답은 복잡하다.
그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과 그의 행동을 용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오빠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섯 살 나에게 가한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
이해는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끝나지 않는 질문들
오빠의 눈에 새겨진 하얀 표식처럼, 우리의 삶에도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이 남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꿈에서 그 눈을 본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얀 표식. 그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영혼에 새겨진 질문이다.
왜 가족은 서로를 가장 깊이 아프게 하는가? 왜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가장 큰 상처를 주는가?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은 왜 또 다른 누군가를 상처 주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니까.
내가 선택한 길
오빠의 고양이 눈에서 나는 하나의 진실을 배웠다.
상처는 선택의 기로에 우리를 세운다.
똑같은 상처를 받고도, 어떤 사람은 더 깊은 상처를 다른 이에게 주고,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딛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된다.
나는 후자가 되기로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로 되돌려주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이 긴 이야기를 쓰는 이유다.
상처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 침묵이 폭력을 키운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말한다.
아프지만 말한다.
부끄럽지만 드러낸다.
오빠의 눈 속 하얀 표식이 우리 가족의 깊은 상처를 담고 있다면, 이 글은 그 상처를 치유하려는 나의 작은 시도다.
완전한 치유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의 상처는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