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끝나는 이혼

지워지지 않는 흔적

by 연담

우리 집은 슈퍼를 했다.

작은 상점 하나가 우리의 생계였고, 부모님은 그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가게와 집의 경계는 모호했다.

손님들의 목소리, 계산기 소리, 동전 세는 소리가 우리의 일상적인 배경음이었다.

겨울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가 춥다며 난로의 연통을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그의 손길은 언제나 폭력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룰 때도 마치 적을 대하듯 했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주전자가 쏟아졌고, 뜨거운 물은 언니의 팔과 허벅지를 덮쳤다.

언니는 심한 화상을 입었다. 그 순간의 비명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살이 타는 순간의 충격과 공포가 담긴 울음이었다.

언니의 피부가 붉게 익어가는 모습, 물집이 잡히고 터지는 과정, 그 모든 것이 나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 이후, 언니는 여름에도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지 못하게 되었다.

흉터가 너무 깊었고, 그 상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엔 너무 생생했다.


언니의 몸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여름날의 시원한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고, 물놀이도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그녀의 피부에 새겨진 상처는 그녀의 자유와 일상까지 제한했다.

언니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밤마다 이불에 오줌을 쌌다.

몸이 기억하는 공포는 그렇게 오래 남았다.

의식은 잊어도 몸은 기억한다.

그 트라우마는 언니의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았고, 매일 밤 그녀를 찾아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의 몸이 끊임없이 외치는 비명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보호해줘."


이듬해엔 나도 화상을 입었다. 다섯 살 무렵이었다.

난로 위에 있던 찌개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 뜨거운 국물을 내 허벅지에 그대로 쏟았다.

뜨거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 순간 나는 내 살이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통증을 넘어선,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엄마는 가게 앞에서 다른 아주머니들과 이야기 중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울부짖었다.

그러나 내 울음소리는 가게의 소음에 묻혔다.

나의 고통은 부모님이 놓친 일상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매일 거즈를 새것으로 갈 때마다 악을 쓰며 울었다.

화상 부위에서 거즈를 떼어낼 때 느껴지는 고통은,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힐 정도다.

마치 피부 대신 내 영혼을 한 겹 벗겨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일, 그 고통은 반복되었다.


나는 지금도 집에서조차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

언니는 아직도 여름이면 망사 가디건이나 얇은 남방을 걸친다.

우리의 몸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품고 있다.

그것은 흉터를 넘어 우리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내 나이 마흔이 넘었다.

화상 흉터는 여전히 그대로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상처만큼은 그대로다.

이미 생겨버린 상처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때, 충분히 피해갈 수 있었던 흉터였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쓰리다.

그 아픔은 후회를 넘어선, 어린 시절의 나를 향한 연민이다.


작은 아이는 보호받을 자격이 있었다.

몸에 남은 화상보다 더 아픈 건, 그걸 막아줄 어른이 늘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몇 걸음의 거리는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이 멀게 느껴졌다.

그들은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있었다.

그때 나를 지켜줄 사람 하나만 있었더라면...

이 흉터도, 이 마음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른다.

어른의 보살핌, 그것은 편의가 아니라 아이의 생존과 안전에 직결된 문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아쉽다.

그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다.

마치 내 허벅지의 흉터처럼, 그 감정도 내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 상처는 계절도, 나이도, 시간을 넘어 우리 자매의 삶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것은 흉터를 넘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다.

보호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증거이자,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 몸의 흉터를 자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것을 상처가 아니라, 내가 견뎌낸 역경의 증거로 볼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 흉터와 함께 살아간다.

그것은 내 일부가 되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여름 반팔 반바지 입은 모습.jpg


어쩌면 진정한 치유는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어려운 배움의 과정 속에 있다.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keyword
월, 수, 금 연재
이전 03화죽어야 끝나는 이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