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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부동산을 ‘연금’으로 바꾸는 설계는?

3. 장기 전략 및 Exit

by 도진

시세차익에서 현금흐름으로: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하는 패러다임 전환


“시장은 예측할 수 없지만, 현금흐름은 설계할 수 있다.”


현역 시절, 당신의 모든 투자는 오직 '가격 상승'이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성장 지향적 비즈니스였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자산 운영은 이 모든 패러다임을 역전시켜야 한다. CEO의 시선은 이제 '얼마나 오를까?'라는 불확실한 질문에서, '매달 얼마가 들어올까?'라는 확실한 질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마치 폭발적인 매출 성장을 꿈꾸는 스타트업에서, P&G나 코카콜라처럼 매일 꾸준히 돈이 도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거인(Blue Chip)으로 사업 모델을 바꾸는 것과 같다. 은퇴자의 자산 운영은 '수익률'보다 '현금 흐름의 안정성'을 핵심 지표(KPI)로 삼아야 한다. 시세차익은 변동성이 크지만, 매달 일정한 현금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들어온다는 사실이, 노후의 삶을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견고한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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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효율성과 리스크를 고려한 '현금 엔진' 구조 개편


현금흐름형 자산으로의 구조 개편은 단순히 월세 전환을 넘어, 보유 주택을 '가족의 연금 엔진'으로 재구성하는 고난도의 구조조정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현행 다주택 중과세 정책을 회피하는 동시에 시장 리스크가 큰 상품을 지양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거주 공간의 전략적 이중화를 통해 도심의 고가 주택을 임대용 자산으로 전환하고, 생활비가 낮은 지역의 중소형 주택으로 이주하여 실거주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본을 잠식하던 주택이 '수익 엔진'으로 기능이 바뀐다.


다음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다각화 전략이 필수적이다. 현재 다주택에 대한 중과세 부담이 워낙 커서 주거용 부동산을 통한 다각화는 비효율적이다. 또한, 최근 몇 년간 높은 리스크를 보인 지식산업센터나 생활형 숙박시설 같은 틈새 상품에 의존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는 노후의 평안을 위협하는 투기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현금 흐름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다각화 전략은 '대체 불가능한 업무 수요'가 검증된 핵심 상업용 자산에 집중되어야 한다. 최근 수익성이 흔들리는 생활밀착형 상가보다는, 임차 수요가 확실한 핵심 업무지구 내 소형 오피스나, 안정적인 배후 수요를 가진 병원/학원 건물 지분 등 '시스템적 수요'에 기반한 자산을 선별해야 한다. 즉, 화려한 개발 호재보다 경기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곳을 찾아 '소형 분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함으로써, 리스크는 줄이고 세금은 관리하며 노후의 불확실성을 흡수해야 한다.



'자산 유동화'를 통한 금융 혁신과 관계 자본(R) 구축


잠자고 있는 부동산을 깨워 현금 흐름으로 바꾸는 과정인 자산 유동화는 은퇴 경영의 핵심이다.


A. 주택연금을 통한 '거주 안정성' 확보

고령층에게 가장 강력한 유동화 수단은 주택연금(역모기지)이다. 주택을 담보로 월 현금을 받으며 사망 시까지 거주는 그대로 유지하는 이 방식은 '거주의 안정성'과 '종신 현금 흐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주택을 직접 현금화하는 월세 전환 전략과 달리, 삶의 터전을 유지하면서 금융 상품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독보적이다. 다만, 가입 시점의 주택 가격, 금리 변동성, 그리고 상속재산으로서의 가치 희석 가능성 등을 가족 구성원, 특히 상속인과 충분히 논의한 후 전략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은퇴 생활의 재무적 기둥을 세우는 '기본 설계'에 해당한다.


B. 부동산 펀드와 리츠(REITs)를 통한 '소액 분산' 현금 흐름 창출

많은 은퇴자가 상가나 빌딩 투자를 '고액 자산가들만의 영역'으로 치부하지만, 금융의 혁신은 그 문턱을 낮추었다. 대형 오피스 빌딩, 물류센터와 같은 기관 투자자급 우량 자산의 현금 흐름에 접근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은 부동산 펀드나 상장 리츠(REITs)를 활용하는 것이다. 국내 리츠 시장에 대한 낮은 인식과 성장 정체는 사실이지만, 핵심은 리츠라는 '상품' 자체가 아니라, 수백억 대 대형 상업용 부동산의 현금 흐름을 소액으로 간접적으로 공유하는 유동화 메커니즘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당신의 자산을 '배당받는 기업의 주식'처럼 유동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안정적인 배당을 받는 구조와 같다. 당신이 직접 수십억짜리 빌딩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공실 리스크가 현저히 낮은 대형 기관 투자자급 자산의 임대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떠오르는 소액 조각투자 플랫폼은 또 하나의 대안이지만, 유동성과 규제 안정성 면에서 부동산 펀드/리츠가 여전히 주요 경로임을 인지해야 한다. 핵심은 '소유'가 아닌 '현금 흐름'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이처럼 복잡하게 진화하는 유동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관계 자본(R, Relational Capital)이 필수다. 기업이 외부 전문가의 도움 없이 재무 구조를 설계하지 않듯, 은퇴 이후의 개인도 '자산 운영 팀'을 꾸려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설계사, 절세 전략을 제시할 세무 전문가, 법률적 리스크를 검토할 자산관리인과의 네트워크는 은퇴 자산의 복합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보완하고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된다.


결론: CORE 프레임워크와 '평안'을 위한 최종 경영


은퇴 이후의 자산 운용은 더 이상 숫자 놀음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을 얻는 과정이다. 우리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CORE 프레임워크에 맞게 재정렬하여 현금 엔진을 최적화해야 한다. 자산의 '새로운 쓰임'을 창출하는 Creation, 자산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Operation,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Relation, 그리고 지속 가능한 승계 구조를 설계하는 Enabling의 축을 견고히 세워야 한다.


결국 부동산을 '연금'으로 바꾸는 과정은,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현금 엔진을 장착하고 시간을 이기는 평안을 얻는 최종 경영 혁신이다. 시세는 오르내리지만, 매달의 현금 흐름이 있다면 노후의 삶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집은 이제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가족의 미래를 지탱할 견고한 현금 창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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