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차 전략가의 사색
아침에 눈을 뜨면 가끔 생각이 먼저 깨어 있다. 오늘 해야 할 일과는 별개로, 어제 들었던 말 한마디, 문득 떠오른 사람, 오래전 지나온 어떤 장면이 불쑥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세수를 하고, 뉴스를 한 줄 읽고, 첫 통화를 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금방 잊힌다. 마치 방금 지나간 꿈처럼, 어렴풋한 감촉만 남기고 증발한다.
이전엔 그러지 않았다. 생각이 오래 남았다. 어딘가에 저장되지 않아도 며칠이고 마음에 붙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그렇지 않다. 기억은 휘발되고, 감정은 무디어지고, 생각은 흐름을 잃는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생각이 사라지기 전에, 감정이 식기 전에, 기억이 무너지기 전에. 글쓰기는 그런 나의 작은 저항이다. ‘기억의 서랍’을 정리해 두는 일.
정리라기보다는, 꺼내어 본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서랍은 자주 열리고, 어떤 서랍은 꾹 닫힌 채로 오래 방치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열어보면,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낯설고 어색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그 서랍들을 열고 있다. 그 안에는 오래된 업무 일지와 메모도 있지만, 잊고 있던 후배의 말투나, 프로젝트 회의 끝에 남겨졌던 한 문장도 들어 있다. 글을 쓴다는 건 그 조각들을 다시 꺼내어 빛에 비춰보는 일이다.
그렇게 쓴 글은 처음엔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혼잣말처럼 썼다. 말하자면 자기 정리. 삶을 구조화하려는 습관.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혼잣말 같은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닿는 순간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공명. 오랜만에 연락 온 후배가 “그 글에서 제 얘기인 줄 알았다”고 말해줄 때, 글의 파문이 조용히 퍼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든다.
글쓰기는 어쩌면 ‘현재의 나’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읽히지 않더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눈에 머물 수 있다면. 말없이 건네는 안부처럼, 잊힌 꿈 하나가 타인의 기억과 겹쳐질 수도 있다면. 안나의 일기처럼, 처음엔 스스로를 위한 기록이었지만 결국은 세상과 연결된 글이 될 수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물론 요즘은 글이 넘쳐난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개씩 쏟아지고, 대부분은 읽히지도 못한 채 잊힌다. 글이 상품처럼 소비되는 시대. 나도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면 가끔 고민한다. 이 글을 정말 누군가가 읽을까? 이 조용한 혼잣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글은 꼭 읽히지 않아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최소한 그것이 나의 내면을 정리하는 도구였다면. 그것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혹은 부드럽게 만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쓸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전략가로서 오랫동안 ‘의미’와 ‘방향’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논리와 언어, 수치와 설득으로 하루를 채워왔다. 그러나 삶을 완전히 설명해 주는 그래프는 없다. 예측 가능한 논리로는 다 담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메모장 한 귀퉁이에 작은 문장을 적어둔다. 때론 엉성하고, 때론 미완의 생각. 그것이 서랍 속에 오랫동안 쌓인다. 그 중 몇 개는 언젠가 꺼내어 조심스럽게 꿰어보게 된다. 그것이 지금의 내 글쓰기다.
크게 울리려 하지 않는다. 요란하게 시작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 안에서 머물렀던 것들을 조용히 꺼내어 놓는 일. 아주 작게라도 흔들림이 전해진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서랍을 연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사유가 지나치기 전에.
나를 위한 문장이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닿을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기대를 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