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도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놓고 나서,
사람인 입사지원을 계속 하고 있었다.
사실 저번 주에 영어 학원 한 곳에서 시강 면접 제안이 왔었다.
퇴사하기 직전,
‘절대 다시는 학원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무색하게 또 지원서를 넣고 있는 나 자신이 있었다.
처음 GPT와 이야기하며,
회사에 가지 않고 프리랜서로 독립할 방법을 함께 고민했는데 말이다.
학원에서 아이들 학습관리나 상담을 3년간 해왔지만,
‘영어 강사’로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인근 지역 거주자이고 유사 경력이라고 연락을 주셨다.
월급도 320만 원 이상이라 했다.
내가 받았던 월급보다도 높았다.
괜히 마음이 들떠,
무조건 붙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덮어두었던 영어 문법책을 꺼냈다.
TO부정사를 정리하고, 고1 모의고사 해석 연습을 반복했다.
열심히 하던 블로그도 잠시 멈췄다.
새벽 3~4시까지 강사들의 시연 강의를 보며
판서 내용을 외우고 또 외웠다.
'펑크내면 미리 연락 달라’던 교무부장의 말에
오히려 급급해 보이는 그들의 사정이 더 잘 드러났다.
그래서 시강만 어느정도 잘하면 붙을 거라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시강이 끝나고 기다리던 자리에서
바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헉.”
순간, 얼굴에 큰 펀치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영어 강의 경험이 처음이라는 게 그대로 드러났고,
학생과의 소통이나 호흡이 부족했다는 피드백이었다.
“초등부터 준비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돌아오는 길,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오도방정을 떨며 남편에게
“거의 붙을 것 같아!”라며 이야기했었는데,
그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을 만큼 민망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더 미친 듯이 사람인과 잡코리아를 뒤지며
학원 강사 구인 자리에 지원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또 한 통의 시강 제의가 왔다.
‘올타쿠나!’
잠깐의 기쁨도 잠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듯 멈췄다.
학원이나 학습지 강사 자리는
대부분 4대보험이 없었다.
연차도 없거나, 내가 자유롭게 쓸 수도 없었다.
이전 근무 환경보다 더 열악했고,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감정노동은 또 반복될 게 뻔했다.
솔직히 말하면,
물밀듯이 우르르 몰려오는 학생이 넘쳐나는 겨울방학 때는 차라리 알바를 하고 싶었다.
전 직장보다 월급이 적은 직업상담직을 알아볼 때도
“월급이 적더라도 육아가 병행되면 좋겠다.”
그게 내 기준이었다.
학원 강사를 다시 알아보기 전엔
택배, 주주총회 동의서 아르바이트, 재택근무 상담사 일자리까지 찾아봤다.
예전에 했던 일이었으니까,
‘유사 경력이라도 있으면 금방 취업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가기 싫었던 학원을 또 지원했던 것이다.
‘또 다시 돌아간다면, 난 잘 다닐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도대체 뭘까?’
공부방을 창업하려는 엄마들에게도
학생과 엄마들 민원이 끊임없다고
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 해서 관둔거라,
나는 절대 추천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며
이렇게 연락이 오는 학원 면접에, 교육 관련직에 또 이력서를 넣는다.
참 아이러니하다.
최대한 내가 스트레스 덜 받을 수 있는 일도 알아본다.
쿠팡 재택 상담사.
유튜브를 켜서 퇴사해 자신만의 일을 하는 사람이 선택한 직업이었다.
연봉은 적지만, 4대보험, 연차, 퇴직금. 이 있었다.
그리고 면접과 근무 후기들도 찾아봤다.
그렇게 쉽고 편하다 생각한 업무에도 그만두었다는 이유와 후기가 나온다.
어떤 일이든 돈을 버는 이상 쉽고 편한 일은 없었다.
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고, 힘들어도 생계를 위해 버티는 것이었다.
나이를 먹는 이상,
플랜 B와 노후 계획은 세워야 했고
한 달 후면 마흔이 되는 지금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눈앞의 길만은 묵묵히 따라가고 있다.
결국 내 일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의 문제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