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5시.
유은이와 찜질방에 있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평소보다 조금 더 느슨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시원한 식혜가 땡겼다.
“우리 다 씻고 나가서 식혜 먹자.”
아이에게 말하며 샤워를 마쳤고, 옷을 갈아입고 휴대폰을 열어본 순간이었다.
그 짧은 평온을 깨듯, 학원에서 장문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요약해보니...
12월 스케줄이 촘촘해져 당장 투입이 어렵겠다.
죄송하다. 일한 기간만큼의 급여는 보낼테니 계좌 보내라라는 말이었다.
다음주 목요일부터 투입된다는 시간표도 이미 받았던 터라,
그 문장은 누군가 내 뒤통수로 툭 하고 치는 것처럼 얼얼하게 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아이와 찜질방 로비에 앉아 음료를 시키고, 과자를 먹이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억울함’이란 감정이 거칠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주중 내내 그 학원 시간표에 맞춰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내 시간과 노력이 아주 가벼운 깃털처럼 치부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참아도, 참지 않아도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정중하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업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그 문자를 보내는 순간, 비로소 이 일을 끝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로 떠오른 것.
합격 이후 잡지 못한 면접 3군데였다.
일요일 저녁이라 다음날 연락하기로 마음을 정했고,
동탄은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라 제외했다.
평촌 본사 직영 교육팀, 안산 분원이 남았다.
연락해본 결과, 안산은 이미 사람이 찬 듯했고
평촌은 아직 TO가 있다며 내게 다시 연락을 주었다.
그 말에 약간은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정돈되기 시작했다.
취업 사이트를 천천히 뒤적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조건의 공고,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들과 비슷한 경력들을 필요로 하는 공고들이
의외로 꾸준히 보이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한 가지 길만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12월에는 이미 강의 두 건이 잡혀 있었고,
영어 강사든, 상담이든, 재택이든, 단기든
어떤 방식으로든 생계를 이어갈 플랜이 있었다.
그래서 사실… 급하지 않았다.
아니, 급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조금 더 간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 사업등록증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
가벼운 계약직이라도 상관없으니
그 시간을 버티며 내 일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
회사에 다시 들어가든, 못 들어가든
‘회사로부터 독립’이라는 목표만큼은 확실해졌다.
이번 일을 겪고 나니 더욱 또렷해졌다.
마흔이 되기 전,
합격 후에도 이렇게 채용 취소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오늘 평촌 면접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고,
간절함이나 절박함도 내려놓고 갔다.
면접 분위기는 꽤 좋았다.
두 분 모두 친절했고, 예의 있었다.
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는 모습도 오히려 신뢰가 갔다.
혹시 떨어지더라도 나중에 우리 아이를 맡기고 싶을 만큼
참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력서는 여러 곳에 넣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조급하지는 않다.
일단은 단기 일자리로 버티고,
부업이든, 강의든, 글쓰기든
여러 갈래의 길을 열어두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번 마음먹은 ‘나만의 일’을 놓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쌓아온 강의 경력, 상담 경력, 학원 경력이라면
조금 돌아가더라도 다시 문은 열릴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열리지 않던 문이 어느 날 갑자기 열리던 날들을
몇 번이고 경험해왔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그저 조용히,
또 한 번 두드리면 된다.
큰 숨을 내쉬고,
기다려보는 수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