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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반 면접 테스트, 월급은 230만원

by 진심의 온도


저번 주 일요일, 나는 한 수학 학원의 면접을 보러 갔다.


3년 가까이 교육업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기업형 학원이라면 기본 복지는 있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4대보험, 연차, 퇴직금이 있는 학원만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눈을 잡아끈 문장이 있었다.

“정년 65세 보장.”

학원에서 감히 쓰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육아휴직, 주 5일 근무, 연차 사용 가능.

학원 업계에서는 사실 거의 ‘전설’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먼 거리였지만, 이 정도 복지라면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지원 버튼을 눌렀다.




다음 날 저녁 6시, 학원 원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희망 연봉과 육아휴직 사용 여부를 물었고, 나는 이전 연봉 수준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면서도

“수학 강사 이력이 없으니 약간 낮아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신도 나와 비슷한 나이라고 했다.

400명 가까운 학생이 다니는 큰 학원의 규모와 공무원급 복지.
그의 말은 자신감으로 가득했고, 자연스럽게 일요일 12시에 면접이 잡혔다.




조금 기다리자 두 명의 면접관이 들어왔다.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 여성 면접관, 그리고 어제 통화했던 40대 원장이었다.


그는 학원의 복지와 자신의 교육철학, 그리고 다른 사업 이야기까지 풀어놓았다.
좋다면 함께 일해보고 싶다며 은근한 호감도 내비쳤다.

나도 ‘이 복지라면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심껏 대답했다.



그러나 면접이 끝나갈 무렵, 원장이 말했다.

“수학 실력도 조금 체크해볼게요. 붙고 떨어지는 시험은 아니니 편하게 보세요.”

조금 당황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험지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초·중등 수학 강사 지원자에게, 고1·고2 수학 문제가 나왔다.


공식이 흐릿해진 지 오래였고,
6문제 중 간신히 2문제를 풀었다.


풀이 시강까지 이어졌다.


이쯤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번에는 시간표를 건네며
“한글로 그대로 입력해보라”고 했다.

그 사이 시어머니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전화가 계속 울렸다.


하지만 ‘좋은 회사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임했다.


입력 테스트가 끝나자 또 다른 과제가 주어졌다.


학원 직원의 CS 녹음 파일을 듣고 잘못된 점을 분석하고,
메신저에 올리는 형식으로 답변을 작성하라.


그 순간, 묘한 이질감이 밀려 왔다.


왜 단 한 번의 면접에서 이렇게 끝도 없는 테스트를 하는 걸까.


하지만 도중에 일어나 나갈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2시간 반이 흘렀다.


그리고 돌아온 연봉 제안

원장이 다시 들어와 말했다.


고등 수업 투입은 어렵고, 한글은 “고급 기능을 배워야 하고” CS는 조금 연습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

“이 정도면… 신입 연봉을 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월 230만 원입니다.”


순간 멍해졌다.


우리 동네 콜센터·직업상담사만 해도 230은 받는다.


그런데 여기서는
수학 강사 + 행정 + CS 응대를 모두 해야 한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원장은 다시 물었다.

“혹시… 연봉 3,000이면 어떠세요?”


면접에서 분명 초봉 3,200이었다고 말했는데,
그걸 듣고도 이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이
이 회사의 운영 방식을 명확히 보여줬다.


나는 짧게 말했다.

“생각해보겠습니다.”

그게 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가장 예의 있는 문장이었다.




거의 1시간을 운전해 돌아오며,
내 곁에 남은 것은 피로, 허탈함,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뿐이었다.


시어머니와 마주 앉아 초밥을 먹는데도
입 안으로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차에서 내려 태울 때까지
속에서 올라오는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조용히 다른 곳에 지원서를 쓰고 있었다.


그 학원은 아니었다.


내 시간과 정성과 인생을 이렇게 소모시키는 곳은
더 이상 바라볼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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