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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아바라 한 잔이면

관계시리즈 1. 육아 동지의 시초

by 수하

"엄마 오늘 늦어. 아빠랑 저녁 맛있게 먹고 먼저 자."


모처럼 찾아온 자유부인의 날, 보슬보슬 내리는 여름비가 싫지 않았다. 엄마 사전에 따르면 '자유부인'이란 말 그대로 육아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개인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뜻한다. 누가 만든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대략 이와 같은 상황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다. 물론, 아직까지는 "엄마 언제 와? 보고 싶어"라고 한 시간마다 연락해 주는 아이 덕분에, 내 소속을 망각하지 않는다.


오늘만큼은 퇴근길 지하철을 놓칠까 봐 서두르지 않았고, 미리 예약해 둔 힙한 레스토랑에 앉아 책을 읽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오늘 나의 데이트 상대는, 아이가 6개월일 때 처음 만나 열한 살이 된 지금 서로의 친구가 된 그녀다. 아이 셋을 키우는 워킹맘과 평일 저녁에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온 우주가 도와야 가능한 일이라,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만나야 함을, 그리고 노키즈로 만나야 할 만큼 서로에게 진짜 '친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육아 이야기가 대화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가끔씩 만나 삶의 희로애락을 주기적으로 나눠야만 하는 너와 나는, 소위 '코드'가 맞는 사이다.


우스갯소리로 '육아 동지 1기'라고 부르는 그들은 한 마디로 슈퍼우먼에 가깝다. 둘째, 셋째까지 키우면서도 명랑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고, 더 성장하기 위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는 명랑하고도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초보 엄마 시절, 가장 계산 없이 친해진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쩐지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의 영아기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아이의 성향 보다 엄마의 성향이었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타고난 기질이 있더라도 엄마의 통제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친구 물건을 자꾸 빼앗거나 다른 사람을 때리면 엄마가 번쩍 들어 떼어놓을 수도 있다. 나에겐 "낮잠 재우고 커피 한 잔 할까요? 우리도 살아야죠."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던질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지가 필요했다. 그 시절 인간관계에서 중요했던 것은 결국 나와의 '코드'였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와 긴 겨울을 보냈다. 요즘은 신생아를 데리고도 잘 나가던데, 왜 나는 조금만 밖에 나가도 큰일 나는 줄 알았을까. 계절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처음 하는 육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더 컸다. 백일동안 반복되는 일상 속에 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베란다 창으로 먼 밖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내 백일 간의 모습과 겹쳐져,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백일이 지나고 베이비 마사지 수업을 듣겠다는 명목으로, 아이를 둘러업고 나갔다. 남편이 아닌 어른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고, 남이 타주는 커피도 마시고 싶었다. 6개월쯤 되어 보이는 아가들 열댓 명이 동그랗게 둘러앉고, 엄마들이 그 뒤를 감싸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아이와 엄마가 모두 닮아 있었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엄마들은 선생님 지시에 따르느라 분주했고, 엄마 미소도 번졌다가 당혹스러움도 번졌다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수업이 끝나고 한 엄마가 "시간 되시는 분들, 차 한잔하고 갈까요?" 하고 먼저 말을 건넸다. 육아를 하다 보면, 삶의 곳곳에 이런 캐릭터가 꼭 한 명씩 등장하는데,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다. 먼저 주도하진 못해도 잘 따를 수는 있으니까. 여덟 명쯤 되는 엄마들이 비슷한 아기띠를 하고 문화센터 지하 식당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잠든 아이도 있었고, 깨어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아직 통제 가능한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자기(아이) 소개가 시작됐다. 정말 오랜만의 자기소개였다. 첫째 아이인지, 아이가 몇 개월인지, 같은 동네라도 어디 사는지 등등. 자기소개지만 어디에도 나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내 나이가 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휴직 중인지, 고향이 어디인지는 당장은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 번의 만남이 두 번이 되고, 모임에서 보통 그렇듯 서로 취향이 맞는 소그룹이 생겼다. 이유식 이야기, 걸음마 시기, 돌잔치 준비, 어린이집 입소, 복직 시기, 둘째 계획까지 우리의 대화 주제는 끝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 낮잠 시간을 체크해 가며 유모차로 스무 바퀴쯤 돌고, 낮잠 미션에 성공하면 나란히 앉아 시럽을 듬뿍 넣은 아이스 바닐라라떼를 마셨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누구는 둘째를 낳고, 누구는 복직하고, 서로 다른 친구들도 생기면서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우리는 잊을 만하면 만나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10년이 흘러가는 동안, 초보 엄마 시절 서로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변함없이 응원한다. 그들은 그때도 나를 지탱해 주었고, 지금도 그 소속감으로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




육아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언젠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더 이상 적극적인 인간관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육아의 세계에서도 동반자는 ‘필요’를 넘어 ‘필수’였다.


생각해 보면, 아이의 영아기 인간관계는 중고등학교 새 학기 때, 나와 코드가 맞을 것 같은 친구를 살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는 불편한 인간관계도 드물었다. 너도 처음이고 나도 처음이니, 서로 미워하지 말고 위로하며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다. 게다가 아이들로 인한 트러블이 생길 일도 별로 없었던 것이, 그 시절 아이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었으니까. 그들은 잘 먹고 잘 자주기만 하면 되는 시기였다. 부모의 ‘설계’가 불가능한, 어쩌면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시기다.


확실히 기억나는 건,

그때 우리, 아이스 바닐라라떼 한 잔이면 진짜 행복했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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