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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발가락이 닮았네

엄마 닮아 미안해

by 수하

"엄마, 나는 엄지발가락이 왜 이렇게 큰 거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이다.


나는 유난히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큰데, 이는 나의 아빠를 닮은 것이고 아이는 고스란히 이런 나를 닮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큰 엄지발가락이 신경 쓰여 아이도 그럴까 내심 걱정이 됐지만, 아이는 아직은 엄마랑 닮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나 보였다. 엄마 발가락과 자기 발가락을 맞대보며 좋아하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마음이 귀여웠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린 시절 내 손을 볼 때마다 아빠가 떠올라 괜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아이의 유난히 작은 두상은 아빠를 닮았고, 길쭉길쭉한 팔다리는 엄마를 닮았다. 내가 아이의 얼굴 중 가장 좋아하는, 쫑긋 솟은 귀는 아빠와 똑같이 생겼고, 쌍꺼풀 없는 작은 눈매는 엄마를 닮았다.


"누굴 닮아 이렇게 씩씩하지 못하니?"


드라마 속 대사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가끔은 그런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신중하고 함부로 나서지 않는 태도는 아빠를 닮은 것 같고, 외향적이고 단단한 면은 엄마를 닮은 것 같다. 무난한 식성이나,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잘 자는 습관은 엄마 아빠 둘 다를 빼닮았다.


물론 아이가 독립적으로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고, 그 부분이 유전이라는 것이 명확히 증명된 것도 아니다. 어찌 보면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일지라도, 부모는 작은 것 하나까지 닮은 부분을 찾아내고 싶어 한다. 아이와 우리 사이의 닮음을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신비롭고 따뜻하다.


그리고 또 신기한 건, 아이가 엄마 아빠를 꼭 반반씩 닮아 있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OO 이는 엄마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


아이가 네 살 때, 어린이집 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하셨다. 그 시절 보통은 다들 아빠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가요? 다들 아빠를 닮았다고 하던데” 하고 웃으며 얼버무리곤 했다. 나로서는 세상 제일 귀여운 아이가 나를 닮았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그러다 어느 날, 부모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아빠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머, OO 이는 아빠랑 정말 똑같이 생겼어요."




나를 닮아 미안한 것도 있다.


내 초등학교 1학년 때 사진을 보면, 반에서 안경을 낀 건 나를 포함해 단 둘이다. 학교에 들어가 칠판을 봐야 하면서 시력이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안경을 맞췄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평생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왔다. 성인이 된 후 렌즈를 자유롭게 끼면서부터는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것에 대해 큰 불편을 못 느끼고 지냈지만, 어릴 적의 안경은 내게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가 여섯 살 때 영유아 검진에서 시력이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래보다 미디어 접촉을 많이 통제해 왔던 터라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와 관련된 일에는 유난스럽고도 나약한 존재가 되는 게 엄마라서, 그날은 내가 그런 저질 시력을 물려준 것 같다는 죄책감에 한참을 울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 당신은 언제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냐고. 남편 역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안경을 썼다고 했다. 엄마 아빠 모두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니, 아이가 이 유전자의 힘을 피해 갈 길은 없었던 것이다. 세상에, 너무 속상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안경을 끼는 것에 대해, 아이가 불편할까 걱정됐다. 그래서 아이가 일상에서 덜 불편하도록, 자는 동안 착용하는 렌즈를 끼워주고 있는데 벌써 4년이 되어간다. 매일 밤 손을 소독하고 렌즈를 끼우고, 늘 아이보다 10분 먼저 일어나 인공눈물을 넣어주고 렌즈를 빼준다. 아마도 이런 정성으로 내가 느끼는 알 수 없는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좋은 점이든 싫은 점이든 나를 닮은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신비로운 경험이다.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은 훨씬 더 재미있고 활기차다.


아빠의 좋은 점, 엄마의 좋은 점, 그리고 우리가 가지지 못한 점까지 두루 닮아, 아이가 예쁘고 따뜻하게 자라주길 바라는 것이 엄마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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