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두 번째 수업에서 만든 향이 마음에 들었다. 꽃과 나무, 흙냄새가 섞인 내가 원래 좋아하든 스타일의 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어울릴 향. 마음에 드는 향이 나온 덕에 세 번째 수업이 기다려졌다.
이번 수업은 특별하게 진행됐다.
"그동안은 직접 마음에 드는 향으로 향수를 만들어보셨잖아요. 오늘은 제가 주제를 정해드려 볼까요?"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주제라 하면, 꽃과 나무, 흙이 섞인 향. 혹은 과수나무. 이런 식으로 그림을 그려주시면, 내가 거기에 맞춰 향을 선정하는 식이라고 짐작했다.
"미래에 내가 바라봤으면 하는 시선이나 바람을 만들어볼까요? 가까운 미래든, 먼 미래든 상관없어요."
"......"
"너무 어려운가요?"
"제가 그리는 미래요? 최근에 일 쉬면서 새로 생각해 보는 중이라, 너무 어려워요."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면 좋아요."
막막했다. 예전에 내가 그리던 미래라면,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느끼는 시점이었고, 그게 무엇인지 찾는 시기였다.
"향을 통해서 내가 그동안 떠올리지 못한 것을 느껴보세요. 생각하면서 치유할 수 있고, 성장도 할 수 있어요. 서사를 발견하기도 해요. 제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선생님은 자신이 그리는 미래를 들려주었다. 마당이 있는 집, 책을 읽는 오후, 잔디밭 위의 강아지.
"저는 최근에 번아웃, 무기력, 우울 이런 거 다 겪고서 무너뜨리는 중이었거든요. 그려오던 미래도 새로 쌓아나가려는 중이라 지금은 그려지는 게 없어요."
선생님은 추상화로 그려도 좋다며, 작업실 옆에 서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이에요. 이 그림을 보면 편안해져서 정말 좋아해요."
제목을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림을 바라보다가 문득 구름이 떠올랐다.
"선생님, 제가 예전에는 구름 위에서 떨어질까 봐 매일 불안하고 긴장한 채로 살아왔거든요. 그게 저를 힘들게 했던 거 같아요. 같은 구름이지만 미래에는 소파처럼 침대처럼, 제가 그 위에 편안하게 누워있으면 좋겠어요. 여유롭게요. 구름 위에서 뛰어놀아서 발이 빠지는 대로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는 저였으면 좋겠어요. 같은 뭉게구름인데, 그 위에 있는 저는 더 이상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걸 향수로 만들어볼까요?"
"네!"
언제나처럼 원료의 향을 하나씩 맡고, 노트에 내가 느끼는 향의 이미지를 글로 썼다.
"풀과 풀 사이에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 "꼬릿한 캐러멜 냄새" "쿰쿰한 주방 손수건" "삼 옆에 아몬드"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후추 뿌린 풀냄새"
그중에서 내가 그린 하늘에 어울리는 향들을 선별했다. 구름, 하늘, 포근함, 약간의 햇살.
"포근" "시원한 편안함" "개운하게 잘 자고 일어난 이불" "깨끗한 화장실의 핸드솝 냄새"
하늘에 있는 느낌이라 땅 쪽의 기운은 담지 않았다.
그렇게 완성한 세 번째 향.
선생님은 맡자마자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단단한 뭉게구름이 그려져요. 다우니 향 같아요."
다우니라니 뜻밖이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포근한 구름의 향은 원래 내가 좋아하는 향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미래라고 생각하고 맡으니 꽤 마음에 든다.
내가 만든 세 가지의 향을 주변인들에게 보내고 느낌을 물어봤다. 놀랍게도 모두 다른 향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만든 향을 의외로 많이 좋아해 줘서 뜻밖이었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번째 향수는 생각보다 인기가 없어서 의아했다. 사람의 향 취향이란 정말 다양한가 보다.
향은 결국 사람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 내가 만든 향들이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그 향을 맡는 순간의 공기까지도 함께 기억되면 좋겠다.
*이 향을 소량 2ml 정도 드리고 싶은데, 댓글 다시는 분들에게 드릴까요? 선착순 몇 분 정도...? 착불로 보내드려도 받으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