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세 번째로 만든 향수였던, 내 미래를 그린 향을 만들 때 기억이 크게 남았다. 표면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향으로 만드는 것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같은 주제로 모두 다른 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다섯 번째 향수의 주제는 '최초의 나의 공간'이었다. 미화된 장소가 아니라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나의 가장 안쪽 공간.
선생님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었다. 조선후기 영조 정조 시대에는 상상으로 그려낸 정원을 글로 써서 심리 치료를 했다고 소개했다. 나에게도 상상 속의 공간, 관념 속 공간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내가 번아웃˙우울증 걸렸었다니까 상상의 공간을 그리며 치료를 하라고 한 것일까, 내가 상상을 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렇게 제안한 것일까.
나는 가상의 공간 대신에 실제 공간을 떠올렸다. 살면서 장소에 감동을 받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성당', 또 다른 하나는 서울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다. 나란히 적고 보니, 무교인 내가 성당의 장소에서 마음이 움직인 것이 흥미롭다. 가우디 성당은 빛으로 압도하는 공간이었다. 반면에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빛을 최소화한 채, 감각을 깊숙이 밀어 넣는 공간이었다.
이 곳은 빨간색 벽돌이 높게 쌓여있다. 3층 정도의 높은 벽과 커다란 여백이 돋보인다. 거기서 발걸음을 내부로 옮기면 지하임에도 최소한의 조명을 배치해 어둡고 그 덕에 안개가 자욱한 기분이 든다. 무거움이 느껴지는데 불편하지 않고, 무거운 솜이불 안에 있는 것처럼 나를 감싸주는 분위기다. 그 곳을 방문했던 시점은 한창 기자로서 일하고 있을 때, 나를 드러내려는 야망이 가득했을 시기였다. 그 시기의 나는 늘 바깥을 향해 있었다. 더 화려한 것, 더 새로운 것, 더 드러나는 것들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머무는 시간 동안에는 세상 밖과 단절되었고,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나를 만난 최초의 공간이다.
미니멀한 공간이기에 향도 미니멀하게 표현해야했다.
지하의 어두운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라, 지상의 기운은 배제했다. 꽃, 풀, 열매의 향은 배제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향과 안쪽의 향만을 담았다. 땅 속 뿌리나 나무 속 수액 같은 향. 그리고 물안개와 먼지 같은 향도 미세하게 넣었다. 향의 결은 마음에 드는데, 무거운 솜이불 같은 무게감이 없었다. 가벼운 차렵이불 같았다. 선생님께 SOS를 청하니, 샌달우드와 시더우드를 넣어보라고 했다. 이 두개가 합쳐지면 무거운 뉘앙스가 감돈다고 했다. 두개를 더해보니 실제로 그랬다. 나무 향이라 배제했던 재료인데, 조합은 전혀 다른 무드를 만들었다.
프란시스 커정이 "향수는 코로 만드는 게 아닌 머리(기억)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지 조향을 직접해 보니 알겠다. 향수는 결국 기억을 다루는 일. 다섯 번째 향수가 그 사실을 분명히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