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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r 12. 2023

‘더 글로리’에서 ‘벌전’(罰錢)은 왜 필요했을까?

그건 문동은에게 얻을 게 없는 협박이었다

*이 글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더 글로리’ 14화에서 문동은은 연화당의 무당에게 접근한다. 무당은 조금 전 박연진의 엄마 홍영애가 이석재를 죽이는 일을 조력한 후 집에 돌아왔다. 문동은은 무당을 협박해 그가 박연진 앞에서 윤소희에 빙의된 것처럼 연기하게 만든다. 무당이 꺼낸 윤소희의 존재에 박연진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무당과 문동은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무당은 갑자기 허공을 보고는 “온몸은 불자국이고 머리통은 다 깨져서 죽은 년이 왜 여기 있어!”라고 소리 지른 후 벌전(罰錢)을 받아 쓰러진다. 맥락상 무당은 실제 윤소희의 영혼을 보았을 것이다. 문동은은 윤소희의 존재를 느낀 것처럼 눈물을 흘린다. 


문동은에게는 얻을 게 없는 협박


처음에는 이 장면이 가진 에너지에 압도당했지만,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무당에게 윤소희에 빙의된 것처럼 연기를 시키는 건, 문동은 다운 방식도 아니고 이 드라마가 복수를 진행하던 리듬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문동은은 가해자 5인방의 주변에서 그들이 무너뜨릴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여 그들을 위협했다. 그래서 박연진의 딸 하예솔의 담임 선생님이 되려 했고 강현남을 통해 그들을 추적했다. 그들이 가진 비밀, 관계, 욕망을 파악하고 뒤흔들어 그들이 스스로 무리수를 벌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동은은 형사가 추궁하는 범위 내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게 불법인가요?” 물론 문동은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건 아니다. 주여정과 짜고 그가 손명오의 시체에 박연진의 피부조직을 심어놓게 했다. 그런데 이건 이미 신영준 차장이 손명오의 시체에 저지른 불법을 다시 불법으로 복원한 거라 법망에 걸리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더 글로리’ 속 빌드업에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예상한 결과가 분명했다. 그런데 무당을 협박할 때 문동은은 무엇을 얻고자 했던 걸까? ‘벌전’의 굿판이 벌어진 후 박연진의 행동을 보면 이 굿판은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박연진은 강현남을 찾아가 일단 홍영애와 합의부터 하라고 강요한다. 이 행동은 연화당에서 윤소희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다. 문동은과 강현남이 짜고 자신의 엄마를 엮어서 이석재를 죽였다는 것에 화가 났고, 일단 엄마를 교도소에 보낼 수는 없으니 합의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상하다.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 문동은은 무엇을 위해 무당을 협박한 걸까? 박연진이 놀라는 표정을 보기 위해서? 고작 그것 때문에? 혹시 무당 앞에서 박연진이 스스로 참회를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 정도로 참회를 할거라고 판단했다면 문동은의 복수극은 매우 싱겁게 끝났을 것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흐름과 맥락상, 이 협박은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동은이 아니라, 김은숙 작가를 포함한 드라마 제작진의 선택이라면 조금 이해할 수 있다. 


문동은은 모르지만, 시청자는 알고 있는 그날의 진실

무당이 윤소희의 존재를 드러낼 때, 박연진은 과거 폐건물 옥상에서 미필적 고의로 윤소희를 죽인 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이 기억은 드라마의 한 시퀀스가 되고, 시청자에게도 전달된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문동은은 알 수 없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알 수 있는 그날의 진실. 일단 나는 그처럼 이 벌전의 굿판이 드라마의 정보 전달 연출에 따라 기획되었을 뿐, 문동은의 의지에 따라 벌어진 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굿판 외에도 이런 정보 전달의 연출이 ‘더 글로리’ 파트 2에서 자주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파트1과 비교할 때 더욱 눈에 띄는 부분이다. 


파트 2에서 손명오가 사라지기 전후의 진실에 대해 문동은 스스로 파악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시에스타 지하의 작은 창고에 또 다른 진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정도? 박연진이 손명오를 왜 어떻게 죽였는가는 프로포폴 주사를 맞고 잠에 빠진 박연진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것이다. 역시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그날의 진실. 이사라가 손명오를 마지막으로 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마약에 취한 그녀의 환상에서 보여질 뿐이다. 문동은이 주여정과 짜고 최혜정을 협박해 박연진을 병원으로 유인한 이유는 그녀의 발에 있는 상처조직을 떼어내려고 한 것이지, 마취에 취한 박연진이 알아서 진실을 토해낼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사라를 마약으로 유인한 것 또한 교회 신도를 포함한 세상이 이사라의 비밀을 알게 되길 원한 것이지, 마약에 취한 이사라가 손명오와의 마지막을 알려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 아니다. 문동은은 마약에 취한 이사라가 음란한 행위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두 장면과 비교할 때도 ‘벌전의 굿판’은 오로지 ‘정보 전달의 연출’만을 위해 그 타이밍에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앞의 두 장면은 문동은이 실제적인 복수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짜인 계획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벌전의 굿판’은 처음부터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않았던 계획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윤소희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그런데도 혹시 ‘벌전의 굿판’이 필요했던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연출과 배치의 맥락이 아닌, 이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를 위해서라면? 이 굿판은 두 가지 레이어를 갖고 있다. 첫 번째 레이어. 무당이 일부러 윤소희에게 빙의된 연기를 하는 건, 문동은에게 필요 없고 박연진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두 번째 레이어. 무당이 예기치 않게 “온몸이 불 자국이고 머리통이 깨진” 여자의 영혼을 본 건, 무당과 문동은에게 예기치 못한 충격을 가져온다. 이 장면은 김은숙 작가가 생각할 때 문동은이 윤소희의 존재감을 더 실제적으로 체감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은숙 작가는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이걸 추론해보면 ‘벌전의 굿판’이 꼭 필요했던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파트 2에서 윤소희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도 현재의 인물들을 두렵게 만드는 존재다. 문동은이 가지고 있던 윤소희 사건의 조서는 박연진을 당황하게 한다. 윤소희의 시체가 안치실이 아니라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는 박연진의 엄마 홍영애를 거쳐 신영준 차장을 뒤흔들고, (윤소희를 강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재준까지 초조하게 만든다. 또 윤소희가 죽으면서 뜯어낸 박연진의 명찰은 박연진과 홍영애의 모녀 관계를 끊어버린다. 심지어 윤소희의 존재 때문에 주여정이 이미 윤소희의 엄마까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건 다시 문동은을 뒤흔든다. 파트 1이 문동은의 복수였던 것과 달리 파트 2는 윤소희의 복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윤소희의 존재감은 곳곳에 심겨 있다. 9화에서 윤소희 엄마와의 첫 만남을 떠올린 문동은은 이렇게 덧붙인다. “(소희 복수까지 하겠다고 약속한) 덕분에 저 안 죽은 것 같아요. 죽고 싶은 순간 많았는데, 소희가 저 자꾸 재우는 것 같았어요.” ‘벌전의 굿판은 문동은의 이 대사를 더 강렬하게 뒷받침하는 장면이 된다. 이때 ‘더 글로리’의 이야기에 대한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윤소희는 언제나 거기에서 문동은의 복수를 함께 했다는 초현실적인 접근.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가 문동은이란 ‘칼춤 추는 망나니’를 내세운 윤소희의 복수극이라는 관점이다. 


누군가의 망나니여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

‘더 글로리’를 문동은이 아닌 윤소희의 복수극으로 볼 때, 그리고 문동은을 복수의 주체가 아닌 ‘칼춤 추는 망나니’로 볼 때 이해되는 부분이 생긴다. 16화에서 문동은은 왜  생을 마감하려고 했을까? 복수를 위해서 저질렀던 불법과 악행 때문에? 이건 이미 박연진을 검거한 형사가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어떤 죄책감 때문에? 이건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죄책감을 느낄 거였으면 처음부터 복수를 다짐했다는 것부터 어색하기 때문이다. 이유를 굳이 찾자면 나는 문동은이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쪽이다. 18년 동안 복수를 위해 달려올 때는 복수에 대한 의지로 버티며 살아왔지만, 복수를 끝내고 나니 더 이상 살아갈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문동은이 죽지 않는 이유도 이해될 수 있다. 옥상 난간에 찾아온 주여정의 엄마 박상임은 “소희씨 어머니에게 문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들었다”며 “제발 자신의 아들을 지옥에서 꺼내달라”고 간청한다. 다시 나타난 윤소희의 존재. 그리고 이 장면은 9화에 나온 문동은과 윤소희 엄마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한다. 2011년 가을 서울주병원 시체 안치실 앞에서 윤소희의 엄마를 만났던 그때 문동은은 약속했다. “소희, 집으로 데려올게요. 소희 복수까지 해줄게요.” 문동은은 박상임의 모습에서 윤소희의 엄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윤소희의 망나니로 살면서 버틸 수 있었던 지난 18년처럼, 발포 비타민 녹는 소리를 들으며 지옥에 살던 주여정이 자신의 망나니가 되어 생기를 되찾았던 것처럼, 새로운 동력을 찾았을 것이다. ‘이제는 주여정의 망나니로 살겠어.’ 문동은의 곁에 있던 윤소희가 삶의 의지까지 찾아주는 상황이다. 

달리 보이는 건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다. 문동은과 주여정이 서로에 대한 진심 어린 사랑을 말한 후 지산 교도소 안으로 들어간다. 표면적으로 이 장면은 그들이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고, 사랑하면서 주여정의 복수를 함께 할 것이라는 미래를 제시한다. 하지만 바로 그 앞 장면. 문동은은 윤소희의 납골당을 찾아갔다. “비로소 시간이 흘러가. 축하해 너와 나의 19살을” 이 장면이 여기에 배치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이 생긴다.  문동은이 박연진에 대한 복수를 완료하고 옥상 난간이 올랐던 그날 이후로 한참 지난 시점이고, 주여정이 지산교도소의 의무관이 되고 강영천이 같은 교도소로 이감된 이후의 시점이다. 이 시점상 문동은의 납골당 방문은 억울하게 죽은 윤소희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복수 전문가 문동은이 자신의 첫 번째 의뢰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처럼 보인다. 또 그래서 이 장면은 문동은과 주여정이 함께 교도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다. 앞으로 문동은이  또 다른 ‘윤소희’와 함께 살아갈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이 드라마의 엔딩은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를 가진 그들 모두 ‘칼춤 추는 망나니’로 살아야만 생을 지속할 수 있다는 의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처럼 언제나 거기 있었던 윤소희의 실체를 강하게 느낄수록 ‘더 글로리’의 엔딩도 차가워진다. 문동은과 주여정이 파트2 동안 보여준 꽁냥꽁냥, 달달한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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