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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 놈이 진짜 귀인인가?

사촌 레이첵 (1)

by 마봉 드 포레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마차는 이카레이유 중심가를 지나 세르비카 저택 앞에 도착했다. 세라비를 맞이하러 나온 세르비카 경은 세라비가 웬 후드를 뒤집어쓴 낯선 남자와 함께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래서 얘한테 혼자 오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아니나 다를까 어디서 이상한 놈을 달고 왔네. 첩자 아니면 사기꾼이라는 데 마누라 건다.’ 세르비카 경은 생각했다.


‘가뜩이나 수상한데 직업은 또 마법사라니…’ 세르비카 경이 궁정에서 보아온 왕실 마법사들은 다들 한 수염 하시는 노인네들 뿐이었던지라, 조카 또래로 보이는 젊은 마법사 놈을 세르비카 경은 신뢰할 수가 없었다.


마법사 자격증은 위조가 절대 불가능했으므로 세르비카 경도 자격증을 본 후엔 레이가 마법사라는 것은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의 운명을 건 기밀을 이 얼굴 좀 반반하게 생긴 어린놈의 자슥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세르비카 경의 속을 철렁하게 했다. 국가 기밀을 알고 있는 이상 다른 곳으로 가게 놔두면 더 큰일이라 생각해서 세르비카 경은 일단 마법사를 세라비와 같이 저택 안으로 맞이했다.


세르비카 저택은 귀족의 저택처럼 웅장하고 화려한 저택이었다. 세르비카 경은 비서실장으로 영전하면서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큰 집을 어느 파산한 귀족으로부터 사들였다. 저택을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지만 세르비카 경은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저택에 들어서자 세르비카 경의 외아들이자 세라비의 사촌인 레이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세라비와 약간 닮은 얼굴에 진한 갈색의 머리와 같은 색깔의 선량한 눈을 가진 키 크고 마른 청년이었다. 그의 이름은 레이첵이었지만 너무 외국 냄새 나는 이름이라 남들도 본인도 모두 레이라고 불렀다. 세라비는 이카리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 삼촌이 왜 자기 아들 이름은 굳이 리스코바 이름으로 지었는지 의아해하곤 했다.


“앉아라.” 세르비카 경은 자신도 거실의 소파에 앉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별로 없어. 빨리 준비해서 출국해야 할 게 아니냐.”


“먼 길 오느라 피곤한 사람들에게 쉴 시간도 안 주고 바로 이러시다니 정말 너무 하시네요 삼촌.” 세라비가 항의했다. “짐도 못 풀었구요, 씻고 좀 쉬다가 그때 얘기하시면 안 되나요?”


“짐을 왜 풀어! 낼모레면 다시 떠날 텐데!”


아 그래도 짐도 풀고 빨래도 해야 하고 목욕도 좀 하고 싶고, 하며 중얼중얼 늘어놓는 세라비의 말을 가로막으며 세르비카 경이 말했다.


“나라의 운명을 걸고 위험한 길을 떠나는데, 어제 만난 잘 알지도 못하는 마법사하고 동행하겠다니 너 지금 제정신이냐? 사기꾼이면 대체 어쩌려고 그래!”


세르비카 경은 레이가 앞에 앉아있든 말든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삼촌, 저희 집에 오셔서는 잠깐 여행이나 다녀온다고 생각하라면서요!” 세라비도 마주 외쳤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왜 또 위험한 길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사기꾼은 삼촌인 것 같은데요!”


“말이 그렇지 아무려면 진짜 여행하고 똑같겠느냐!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러 가는 거니까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마법사를 데리고 가면 위험한 순간에 마법이라도 써서 살아날 거 아녀요!"


소파 한구석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레이첵은 아버지의 호통에 하나도 굴하지 않는 세라비를 경외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래 좋다. 마법사가 같이 간다면 위험한 순간에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마법사들이 다들 강하고 무서운 마법만 쓰는 게 아니란다. 넌 이 친구가 마법사라고 했을 때 실제로 마법을 보여달라고 해 봤느냐?”


세라비는 자격증만 확인하고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으므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는 마법사는 꽃 피우는 마법 전문이라 산짐승만 마주쳐도 도망 다니기 바쁘단다. 마법이 그 정도로 종류가 많단 말이다.” 세르비카 경은 그제서야 레이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 마법사라 했지? 이름이 뭔가?”


레이는 공손히 대답했다. “레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구만.” 자기 아들과 이름이 같은 것을 알고 세르비카 경의 호감도는 조금 상승했다.


“아무래도 이게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보니, 자네가 마법사라는 것은 자격증을 확인해서 내 믿는다마는, 우리 세라비가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떤 도움이 될지 증명을 해 주었으면 하네! 자네, 뭘 잘 하나?”


레이는 정중하게 자신은 파괴 마법 전문이라 아무데서나 보여드리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파괴 마법이라니! 그런 위험한 마법을 어디에 쓰려고 배웠나!” 세르비카 경은 더욱더 의심쩍어 이렇게 말했다. “뭘 파괴하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가리는 거 없이 아무거나 다 파괴합니다.” 레이는 설명했다. “쓰임새는 아주 많습니다! 재건축이라던가, 채석장이라던가, 광산이라던가…”


세라비는 물론이고 나라 안의 온갖 도시계획에 관여했던 세르비카 경마저 이 설명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납득을 했다. 아 맞네 그렇네. 재건축하려면 건물 부숴야죠. 채석장에서도 진짜 유용하겠네. 파괴 마법 정말 필수네요. 그래서 그건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데?


“우리 파괴 마법사들은 소음과 분진 때문에 도심에서 마법을 쓰려면 일단 관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해서요. 여기서는 제대로 보여 드리기가 좀 어렵네요.” 레이가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수 없어 정말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그냥 마법 쓰는 것만 보여드리자면, 호두라도 갖고 해 보겠습니다.”


레이첵이 어디선가 잽싸게 호두가 든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내밀었다. 레이는 손바닥 안에 호두 다섯 알을 올려놓고 무언가를 외었다. 레이의 손바닥 위에서 파랗고 몽글몽글한 털실뭉치 같은 빛이 생겨나 호두를 감싸자 호두 다섯 알이 한꺼번에 따다닥딱딱! 하고 터졌다.


레이첵은 와! 하면서 박수를 쳤고, 세라비는 호두 알맹이까지 다 터져서 못 먹게 되었다며 투덜거렸다. 세르비카 경은 궁정 일을 하면서 엄청난 마법도 많이 보았으므로 호두 몇 알 정도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 친구가 진짜 마법사임은 확실히 인정하게 되었다.


“마법 쓸 때마다 관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우리 세라비한테 적국의 군사들이 달려와도 허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닌가?”


“그런 것쯤이야 마법이 아니라 제 오랫동안 갈고닦은 무예만 가지고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레이가 뽐내며 말했다. “저는 무예가 부전공이라서 열일곱 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충분히 물리칩니다. 그런 것은 말씀 안 드려도 제 무도인다운 탄탄한 몸을 보시면 눈치채셨을 텐데요.”


삼촌 쟤 미친놈 맞아요, 나 쟤랑 안 갈래! 하는 세라비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세르비카 경이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네 자신감이 맘에 드는구만! 마지막으로, 자네가 파괴 마법도 하고 무예인지 뭔지 그런 것도 할 줄 안다고 쳐도, 우리 바ㅂ…바르고 착한 조카를 낯선 사람이 따라가야 한다는 당위성이 설명이 안 되네. 여기에 대해서 뭔가 더 할 말이 있나?”


“있습니다.” 레이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세라비 님께는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는 세라비 님을 따르라는 쉬드르 신의 계시를 받고 왔습니다!”


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려 신을 경외하는 몸짓을 해 보였다.


세르비카 경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얼어붙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이 녀석이 어디서 사기 치면서 신을 들먹여! 하면서 당장 내쫓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세르비카 경은 세라비가 도착하기 전에 시내의 용하다는 점집(세르비카 경은 정치인답게 단골 점집 한두 군데 정도는 있었다)에 다녀왔던 것이다.


점쟁이는 세라비의 운세를 점치고는, 세라비가 귀인을 만나 천운을 얻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팔자라고 선언하였다.


‘그래, 역시 우리 집안의 장손으로써 당연한 결과로다.’ 세르비카 경은 생각했다. ‘귀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무튼 출세하는 운명이라 이거지. 최고의 자리라면 어디까지 올라간다는 걸까? 총리대신?’


그러나 이카리아 고원에서 양을 치다가 산에서 벼락을 맞고 신기가 트인 이 점쟁이 할멈은 또한 이렇게도 말했다. “남쪽에서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주되 신이 노하시면 객사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어!”


세르비카 경은 덜덜 떨면서 할멈에게 복채를 쥐어주고 점집을 나왔다. 점괘의 문제점은 귀인이 누군지, 도움은 어떤 도움인지, 남쪽이면 정확히 어디쯤인지 등은 안 알려준다는 점이었다.


세르비카 경은 레이의 말에 퍼뜩 ‘설마 이 놈… 아니 이 청년이… 설마 귀인?’하고 다시금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세르비카 경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퀼테베르 신전에서 전설의 보물 뤼넬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며 세르비카 경에게 보낸 편지 생각이 났다. 세르비카 경은 서재로 가서 편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신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신의 뜻에 따르는 용감한 자의 헌신과 신들의 힘이 깃든 뤼넬과 솔렌의 힘으로 두 나라의 위기를 극복할 것이니라”』


“복수형이네.” 세르비카 경은 편지를 다시 접어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저 놈이 진짜 귀인인가?”


세르비카 경은 거실로 나와 레이에게 물었다. “자네, 집은 어딘가? 어디 사나?”


“그랑쿠르입니다.” 레이가 대답했다. “에르피냥 근처입니다.”


에르피냥은 이카리아 최남단에 있는 해안의 도시였다. 세르비카 경은 레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우리 세라비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자네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게.”


레이는 속으로 그 자리는 제 자린데요?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세라비가 만약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면 바로 밑의 자리라 할지라도 나쁠 것은 없었으므로 온 힘을 다해 세라비를 보조할 것을 굳게 약속하여 세르비카 경을 안심시켰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었다.


한 사람만 빼고.


세르비카 저택 앞. 검은 마차가 황금빛 석양 아래 고풍스러운 저택 앞에 멈춰 서 있고, 정원에는 화려한 꽃들이 만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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