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레이첵 (2)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세라비와 레이는 이윽고 방으로 안내받아 짐도 풀고 목욕도 하며 쉬었다. 저녁을 먹고 나자, 레이첵이 세라비의 방으로 찾아와 내일 입고 갈 옷이 든 꾸러미를 건넸다.
왕궁에서 서기로 일하고 있는 레이첵은 세라비가 다섯 살 때 삼촌 손에 이끌려 이 집에 들어와 18살 성년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 친남매처럼 같이 자란 사이였다. 라를르에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삼촌 집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세라비는 몇 년 만에 보는 사촌이 무척 반가웠다.
“누나,” 레이첵이 어쩐 일인지 돌아가지 않고 머뭇거리면서 말을 꺼냈다. “저 부탁이 있어요.”
“부탁? 나한테?”
레이첵은 계속해서 망설이는 듯했으나, 이윽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누나를 따라가고 싶어요.”
“따라가? 어딜? 칼베르에?”
“네.” 레이첵은 조심스럽지만 간절하게 말했다. “저, 집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에 가보고 싶어요.”
“그런 거라면 휴가를 가지 그래?” 세라비는 위엄 있게 말했다. “나는 나라의 대표로서 외국에 밀사로 가는 거야. 내가 뭐 칼베르에 놀러 가는 줄 아니?”
“저, 여기에만 있다가는 평생 왕궁에서 재미도 없는 얘기들 받아 적다가 죽을 것 같아요. 아버지는 위험하다고 먼 데는 보내주시지도 않구요(그러면서 나는 그 먼 칼베르에 보내는 거야? 하고 세라비는 분노에 차서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가 외국에 보내주겠지만 그렇게 가는 거 말고요.”
뭐라고 거절해야 할지 세라비가 생각하고 있는데 레이첵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마법사 형님도 엄청 멋진 것 같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고…”
세라비는 어이가 없었다. “너는 공부만 하던 아이인데 이런 여행길에 네가 무슨 도움이 되겠니? 가다가 아프면 어떡해? 너 데리고 가는 거 삼촌이 허락하실 리도 없고…”
레이첵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절대로 방해는 안 될게요. 그리고 누나가 공적을 세울 때 누군가가 옆에서 기록을 해줘야 하잖아요! 제가 실시간으로 기록해 드릴게요. 누나! 제발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레이첵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청하는 바람에 세라비는 말문이 막혔다.
레이첵과 같이 이 집에서 살던 어린 시절, 세라비가 꽉 막힌 생활에 답답해 담을 넘거나 정원 울타리 밑에 구멍을 파서 도망칠 때마다 세르비카 경은 하인들을 죄다 풀고 심지어 탐정까지 고용해서 세라비를 도로 잡아오곤 했다. 어린 소년이었던 레이첵은 거의 매일같이 무서운 아버지와 더 무서운 사촌 누나 사이에 벌어지는 반항에 대한 좋지 않은 선례들을 보며 자랐다.
그 결과로 그는 애초에도 순종적이었지만 더욱더 순종했고, 원래도 불평이 없는 편이었지만 더욱더 불평하지 않았다.
힘들었던 그 시절, 학교나 집에서 도망친 벌로 다락방에 갇혀 있는 세라비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거나 몰래 농땡이치다 들어온 세라비를 위해 알리바이 증명을 해 주는 등, 레이첵은 걸리면 자기도 벌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세라비를 따뜻하게 배려해 주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세라비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삼촌이 아무리 호통을 쳐도 반항 한번 하지 않아 너 바보 아니냐고 조롱해도 빙구같이 웃기만 하던 사촌이, 이제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라비는 세라비의 방 바닥에 주저앉아 이미 흐느껴 울고 있는 레이첵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촌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누나…!” 레이첵은 울먹이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윽… 평생 끅끅 감사하께요으끄윽…”
두 사람이 급기야 통곡을 하며 우는 소리에 옆방에 있던 레이가 달려왔다.
‘이 사람들, 진짜 사촌 맞군…’ 레이는 생각했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후후후…’
레이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