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령님이 당신을 돌려보내 주셨어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거대한 흙탕물로 변한 강물이 포효하며 내달리고 있었다. 강둑 위에서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앉아 있던 여인은 두 손을 모으고 강물을 향해 절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인을 과부라고 불렀다. 그녀의 남편은 십 년 전, 오늘처럼 갑작스러운 폭우로 불어난 강에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되었다.
물귀신 여울 근처에 사는 이곳 주민들은 물이 많은 계절에 강에서 잃어버린 것은 재물이든 가축이든 사람이든 빨리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과부는 남편의 시체라도 찾아 장례를 치러 주기 전까지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해도 과부는 매일 강가에 나와 여울의 수호령님께 남편을 돌려달라고 빌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천둥번개가 치는 날도, 얼어붙은 추운 날도 찌는 듯이 무더운 날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는 강가에 나와 여울 방향으로 절하고 집 근처 우물에서 길어 온 맑은 물을 바치며 기도를 올렸다. 십 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하러 강둑에 나타나는 그녀를 마을 사람들은, 심지어 여울의 수호령을 모시는 무녀조차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과부가 강둑에 올려놓은 물그릇은 세찬 바람에 강으로 날아가 버렸다. 과부는 물그릇을 주우러 강으로 다가갔다. 물그릇이 강물에 빠지기 직전에 겨우 집어든 과부는 먼저 간 남편과 이젠 자신을 모른 척하는 가족들, 그리고 자신을 미친 사람 보듯 슬슬 피하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갈기갈기 찢긴 가슴처럼 흙탕으로 엉망진창이 되어 굽이치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절망할 것 없다, 절망할 것 없어. 내 정성이 부족한 탓이다. 수호령님, 수호령님, 이렇게 정성 들여 빌고 있으니 제발 제 남편을 돌려주십시오.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던 과부는 문득 강물 저편을 쳐다보고 깜짝 놀랐다. 폭우로 쓰러져 강가에 걸쳐져 있는 나무에 사람 같은 것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부가 달려가 보니 나무에 걸려 있는 것은 진짜 사람이었다. 과부는 주저하지 않고 양팔 소매를 걷고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물살에 자신도 휩쓸려갈 위험을 무릅쓰고 강물과 사투를 벌인 끝에 과부는 가까스로 그 사람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는 젊은 남자였다. 과부는 남자를 옆으로 뉘이고 등을 두들겨 물을 토하게 했다. 세게 두들기다가 혹시라도 등뼈가 부러질까 걱정되어 조금씩 살살 두들겼다. 남자는 물을 토하기 시작했다.
과부는 강둑의 진흙탕 위에 축 늘어진 젊은 남자를 그제야 천천히 바라보았다. 짙은 갈색 머리에 휘청한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은 십 년 전 강둑에서 움직이지 않는 소를 억지로 끌고 가려다 불어난 물에 빠져 사라진 과부의 남편과 똑같았다.
과부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수호령님이 드디어 남편을 돌려주신 것이었다. 과연 여울의 수호령님이라 돌려주실 때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물에 흘려보내 주셨다. 과부는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찾은 남편에게 숨을 불어넣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수호령님은 반드시 그의 목숨을 되돌려주실 것이다. 젊은 남자는 쿨럭 하는 기침과 함께 숨을 쉬기 시작했다.
과부는 강을 향해 쓰러지듯 절을 올렸다. 뜨거운 눈물이 쏟아지는 차가운 비와 섞여 과부의 얼굴에 흘렀다. 지난 십 년간, 수호령님에 대한 믿음이 흐려지거나 의심한 날도 없진 않았지만, 과부는 믿고 있었다. 반드시 이런 날이 오리라고.
과부는 강둑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 이웃사람의 농기구 보관 창고로 달려가 손수레를 끌고 왔다. 남자 없이 혼자 농사짓고 소를 치며 억셀 대로 억세진 과부의 힘으로도 축 늘어진 남자를 손수레에 싣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과부를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과부의 집은 라피드 쉬르쿠젤 마을에서 강 쪽으로 조금 떨어진 외딴곳에 있었다. 이 집은 원래 밤나무집이라고 불렸다. 집 옆에 밤나무 세 그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부가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과부네라고 불렸다. 이곳에서 과부는 혼자 밭을 일구고 소와 염소를 키우며 살았다.
과부의 남편이 나무와 직접 구운 벽돌과 강가에서 퍼올린 진흙으로 지은 집은 작지만 튼튼했다. 과부는 남편이 실종된 후 집 안마당에 여울의 수호령을 모시는 작은 사당을 직접 지었다. 과부는 그 안에 수호령님께 매일 맑은 물을 바치는 큰 물그릇과 제단을 두고, 하루 일을 시작할 때, 그리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사당에 들어가 수호령님께 절을 했다.
과부는 중간에 몇 번 쉬어 가며 겨우 집까지 손수레를 끌고 와서 젊은 남자를 방 안에 눕히고, 진흙이 들러붙어 엉망이 된 옷 대신 남편의 옷으로 갈아입혔다. 남편이 실종된 후로는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도 사치라고 여겨 한겨울에만 때던 불을 오늘은 제일 크고 잘 마른 장작을 넣어 활활 타오르게 했다. 과부는 이어서 따뜻한 물에 천을 적셔 젊은 남자의 손발을 문질렀다. 그는 숨은 겨우 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창백하게 질려 축 늘어져 있었다.
“마을에서 의사를 불러와야겠군.” 과부는 중얼거렸다.
“어차피 저 손수레도 빨리 도로 갖다 놔야 하고…” 손수레 주인의 성질 더럽게 생긴 얼굴을 떠올리며 과부는 생각했다.
과부는 아직도 세차게 내리치는 빗속에 두고 온 손수레를 일단 자기네 집 광에 가져다 놓았다. 비가 그치는 대로 도로 강둑의 농기구 창고에 갖다 줄 생각이었다. 과부가 광 문을 닫고 집 안으로 돌아오니 젊은 남자는 그새 정신이 들어 눈을 희미하게 뜨고 있었다. 과부의 손에 들려 있던 물수건이 담긴 쟁반이 댕그렁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여보!” 과부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불렀다. 여보라는 말을 십 년간 입 밖에 내서 부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말하면서도 그 단어가 낯설게 들렸다. 젊은 남자는 쟁반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과부를 바라보았다.
레이첵은 천장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전에 본 적이 없는 천장이었다. 이카레이유의 레이첵의 방 천장도 아니고, 템푸스 아르카의 손님용 숙소 천장도 아니었다. 이카레이유 왕립 학교 기숙사의 천장은 더더욱 아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도 천장에 대한 기억이 없자 레이첵은 이것은 처음 보는 천장이라고 결론지었다.
레이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박하지만 깨끗한 방이었다. 바닥에 놓인 화로에는 청동 물단지에 물이 끓어 김이 오르고 있었다. 벽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그림과 글자가 그려진 부적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레이첵은 이 방이 대체 어디인지를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방 안에는 낯익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무겁게 늘어진 팔을 간신히 들어 보니 입고 있는 옷마저도 처음 보는 옷이었다. 레이첵은 겁이 덜컥 났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타고 있던 배가 부서지며 세라비 누나가 물에 빠지고, 레이 형님이 손을 뻗다가 뒤따라 물에 빠지는 광경이었다. 그 후의 기억은 없었다.
문이 열리더니 뭔가가 바닥에 댕그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레이첵은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보고는 이내 소스라쳤다. 눈물이 글썽한 중년의 여인이 누워 있는 레이첵에게 와락 달려들어 두 손을 부여잡더니 “여보!”라고 불렀던 것이다.
세르비카 집안의 40대 후손인 레이첵 세르비카의 인생에서 이렇게 무서운 일은 처음이었다.
레이첵은 아직 말이 나오지 않는 입을 열어 가까스로 말했다.
“…누구세요?”
아줌마의 실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보고 레이첵은 멈칫했다. 아마도 이 분은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 주신 분일 터였다. 그렇다면 대뜸 누구시냐고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예의 바른 청년인 레이첵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겨우 내어 다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긴 어딘가요?”
중년의 여인은 레이첵의 두 손을 잡은 채 침대 곁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씨 착한 분이구나. 내가 살아난 것을 보고 이렇게까지 기뻐하시다니.’라고 레이첵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보…! 아직 기억이 안 돌아왔구나…! 여긴 우리 집이잖아…!”
과부는 이렇게 말하고 레이첵의 아직 차가운 두 손을 꼬옥 잡았다. “괜찮아…! 기억 돌아오면, 우리 다시 여기서 행복하게 지내자…!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레이첵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여보라는 호칭이 칼베르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같은 단어가 지역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왜 나한테 기억이 안 돌아왔다는 둥, 헤어지지 말자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혹시 내가 물에 빠진 이후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내가 그 간의 기억을 잃은 것일까?
레이첵은 더듬더듬 오늘 날짜를 물었다. 아줌마가 울먹이면서 대답하는 것을 들어 보니 오늘은 배가 부서져 모두 물에 빠진 그날이 맞았다. 그렇다면 기억이 끊겨 봤자 반나절 정도일 것이었다.
세라비 누나와 레이 형님은 어디에 있을까? 아줌마는 그들도 구조한 것일까? 레이첵이 가까스로 다른 사람들도 구했는지를 묻자, 과부는 고개를 저었다.
“수호령님이 당신을 돌려보내 주셨어. 이제 우리 둘이서 다시 잘 살면 돼!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내가 당신 잘 돌볼 테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
레이첵은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 말하는 걸 들어보니 무슨 말을 물어도 제대로 대답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과부의 오두막은 침실 겸 거실 겸 부엌으로 쓰이는 큰 방과 여러 가지 당장 안 쓰는 물건들을 넣어두는 다락방, 그리고 욕실 겸 빨래하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과부는 방 한켠에서 뭔가 뚝딱뚝딱하더니 잘게 썬 감자와 생선이 든 수프를 끓여가지고 왔다. 과부는 수프를 식혀 놓고 레이첵을 조심조심 일으켜 침대 벽에 기대게 했다.
레이첵은 과부가 식혀서 떠먹여 주는 대로 수프를 먹고, 차가운 손발이 풀리며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주 오래 잤다. 과부는 레이첵이 푹 잠든 것을 보고 안심하며 재빨리 손수레를 원래 있던 이웃 농기구 창고에 갖다 놓고, 마을에 들러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이미 진료소 문을 닫고 진료소와 붙어있는 자기 집에 들어가 이제 막 한잔 걸치려는 중이었다. 의사는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과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왕진을 오라니 누굴 봐달라는 건가? 자넨 혼자 살지 않나?”하고 과부가 오랫동안 친척들과도 왕래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던 의사가 소리쳤다. “게다가 지금이 대체 몇 신가?”
“아니 몇 시든 그게 무슨 상관이유? 사람이 의사 영업시간 맞춰서 아프기라도 해야 합디까? 지금 엄청 급하니까 당장 와 주쇼. 선생이 늑장 부려서 우리 서방이 다시 죽기라도 하면 내 선생을 아주 요절을 내버릴 테니까 당장 오시우!”
“우리 서방?”
이때까지만 해도 의사는 과부네 집에 이름이 우리 서방이라는 사람이 누워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부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수호령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우리 서방을 다시 되돌려주셨단 말이오! 물에 떠내려와서 지금 많이 아프니까 좀 같이 가 주시오!”
“에라이 이 정신 나간 여편네야!” 의사는 참지 못하고 마주 소리쳤다. “매일 기도해서 서방이 돌아오면 나도 매일 기도해서 새장가 갔겠다!”
그때, 또 다른 마을 사람 하나가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왔다. 방앗간집 어린애가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프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급히 왕진가방을 챙겨 방앗간으로 달려가며 과부에게 방앗간집 애 좀 봐주고 바로 과부네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의사는 재주도 실력도 좋았지만 입이 무거운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에, 과부가 자기 서방이 드디어 돌아왔다고 주장한다는 소문은 의사가 방앗간집 아들 치료를 끝내고 과부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온 마을에 퍼져 있었다.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