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서관 연회실의 저녁식사

이상한 이카리아 사신들

by 마봉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이카리아 사신들과의 만찬에 가야 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평생 왕의 몸단장을 도운 나이 든 시종이 다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게로스는 이젠 봐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거울을 바라보며 시종이 그에게 소매에 은색 자수가 놓인 흰 셔츠와 푸른색의 실크 베스트를 입혀 주고 머리를 매만져 주는 것을 기다렸다.


코린이 왕의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카리아 사신들께서 여기까지 잠입하는 과정에서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킨 경비병들 때문에 발칵 뒤집힌 경비대의 대장을 만나 적당히 둘러대고 진정시킨 다음, 기절한 경비병들 상태까지 확인하고 오는 길이었다.


“이번 이카리아 사신 분들은 꽤 과격하신가 봅니다.” 경비대 상황을 보고하며 코린이 덧붙였다. “일단 등장부터 인상적이네요.”


“밖에서 이카리아 사신이라고 하고 들어올 수는 없었겠지.” 게로스는 왕궁 앞에서 진을 치고 물러가지 않는 두 나라의 감시인들을 떠올리며 무심히 대꾸했다. “그래도 벽을 타고 올라올 줄은 몰랐는 걸.”


“왕궁 내부 경비도 좀 더 강화해야 하겠습니다.” 코린은 게로스가 피식하고 웃는 것을 느끼고 의아하게 여기며 말했다. “사신단은 이미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게로스와 코린은 왕궁 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가면서 코린이 말했다. “아까 세르비카 대사께서 말씀하신 것 말입니다만…”


“뤼넬 말인가? 이카리아는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으니 과연 전설에 기대야 할 만큼 절박하긴 한가 보군.” 게로스가 대답했다.


“저희 쪽 솔렌은 아마 대신전에 보관중일 겁니다. 혹시 모르니 일단 정확한 위치 파악을 해 두겠습니다.”


게로스는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폐하, 그분들이 별관으로 가시면서 저에게 ‘플로르 왕자’도 같이 왔다고 했습니다.”


게로스는 걸음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코린을 바라보았다. “플로르 왕자? 이카리아 왕자 플로르?”


“그렇습니다. 오는 도중에 병이 나서 브레스부르의 수도원에 머무르는 중이라고 합니다.” 코린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일행 없이 혼자서요.”


게로스는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왕자가 밀사를 따라서 여기까지 왔다면 그건 망명이 아닌가? 이카리아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길래 왕자를 여기로 망명시킨 거지?”


“나라가 위태로운 것 치고는 대사님들이 여유로워 보이시니 일단 사연을 들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게로스를 오랫동안 보좌하며 그의 비꼬는 말투까지 점점 닮아가는 중인 코린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플로르 왕자라면 아직 나이도 어릴 텐데, 저들은 어떻게 자기네 나라 왕자를 타지에 혼자 두고 자기들끼리 여기 온 거지? 이카리아 사람들은 정말 이해 불가능하군.”


“일단 혼자 두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외교 참사로 이어질 테니, 내일 당장 브레스부르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게로스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생각했다. ‘플로르 왕자는 나처럼 이카리아 왕의 외동아들 아닌가? 망명이 아니라면, 왕자가 대체 뭐 하러 여기까지 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군…’


게로스와 코린은 이카리아의 사신단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왕궁 서관의 연회실로 들어갔다. 서관의 연회실은 게로스가 국빈이나 사적인 손님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곳이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보안이 필요한 대화를 하기에는 좋은 장소였다.


이카리아 사신들을 다시 마주한 게로스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르비카 대사가 게로스의 돌아가신 할머니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벽을 타고 올라온 이카리아 대사들이 여행 오듯이 짐을 싸 갖고 왔을 리는 없으므로, 게로스는 이들을 뤼미에르관으로 보내면서 시녀장에게 손님들이 입으실 옷을 준비해 드리도록 지시했다. 세르비카 대사는 그 많은 옷들 중에서도 게로스의 할머니 옷을 골라 입은 것이었다.


물론 선왕비가 입던 옷이었으므로 옷 자체는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연로한 왕비가 입던 옷인 만큼 넉넉하고 고풍스러운, 다시 말해 헐렁하고 구식인 옷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입던 예복 한두 벌만 남기고 모두 손님용 의복 창고로 보내도록 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젊은 여자가 굳이 저런 것을 골라 입었다는 것이 놀라워서 게로스는 잠시동안 세르비카 대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실례임을 깨닫고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사님, 편히 쉬셨습니까? 불편한 점은 없으시던가요?”


세라비는 인사말을 까먹은 것을 만회하기 위해 우아하게 고개를 숙여 회답했다. “아주 편안합니다. 폐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내일 의복실로 모셔서 입으실 것을 새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세라비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지금도 아주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대사님은 취향이 품위 있으시군요.”


레이는 속으로 ‘아, 저걸 돌려까네. 재수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라비가 여전히 우아하게 웃으며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지만,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듣고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게로스는 레이가 한숨을 쉬는 것을 듣고 아차 싶었다. ‘아, 습관적으로 비꼬아 버렸네. 세르비카 대사는 못 알아들은 것 같아 다행이다. 조심해야지.’


하지만 저 라마야나의 지팡이를 밥상머리까지 갖고 와서 의자에 기대 놓고 있는 마법사 놈은 알아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게로스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마법사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군.’


세라비는 칼베르 왕의 미소 띤 얼굴이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게 웃고 있지만, 왠지 차가운 미소였다. 마치 템푸스 아르카에서 본 창조신들의 석상 같았다. ‘우리는 심판한다’라는 무서운 글귀와 함께 높은 곳에서 세라비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 창조신들의 미소와 똑같았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늦은 저녁식사라 이미 창 밖이 어두웠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금빛 촛대에 꽂혀 있는 촛불과 벽과 기둥에 걸린 조명으로 연회장 안은 환하니 밝았다. 세라비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이카리아의 세르비카 비서실장과 성이 같으신데 혹시 친척 되시냐, 라고 물은 코린과 게로스는, 그들이 그 세르비카 경의 조카와 심지어 아들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오늘은 이카리아 대사들 때문에 여러 번 놀라네.’ 코린은 생각했다. ‘아들과 조카를 둘 다 보내다니, 얼마나 애국심이 강하면 그럴 수가 있지?’


코린은 옆 나라 대신인 세르비카 경에게 마음속 깊이 경외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 세르비카 경의 아들은 꿈에도 그리던 사신단과 칼베르 왕과의 역사적인 회동을 기록하느라 밥 먹는 동안에도 테이블에 기록장을 올려놓고 정신없이 받아 적는 중이었다.


‘…틀림없이 보기와는 달리 비범한 사람들일 거야.’ 코린은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브리엘 부대사님,” 게로스가 레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사님의 지팡이가 낯이 익은데, 혹시 라마야나 님과 관련이 있으십니까?”


“브리엘 부대사님이 누구야?” 세라비가 맞은편에 앉아있던 레이첵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레이 형님이잖아요!” 레이첵이 속삭였다.


“레이 성이 브리엘이었어?” 레이에게 성이 있다는 것조차 오늘 처음 깨달은 세라비가 놀라서 되물었다.


“누나! 파견 문서에 적혀 있잖아요. 이제까지 설마 한 번도 안 읽은 거예요?”


진짜로 한 번도 안 읽어본 세라비는 입을 다물었다. 레이도 이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별로 놀랍지도 않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님께서 폐하 얘기 많이 해 주셨습니다.” 레이가 정중하면서도 친근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게로스도 웃으면서 말했다. “라마야나 님은 저 일곱 살 때 제자를 만나러 가신다고 왕궁을 나가셨는데, 그 제자가 대사님이셨나요?”


레이는 라마야나가 칼베르 왕실 마법사였을 때부터 자신을 만날 거라는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지만, 침착하게 웃어 보였다.


“저 엄청 말 안 들었는데, 무슨 얘기를 해 주셨을지 걱정이 되네요.” 게로스는 어쩐지 질투가 솟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고 쾌활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제가 더 말을 안 들어서… 매 순간 폐하와 비교당했습니다.”


게로스는 이 대답이 예의상 하는 소리인 것을 알면서도 조금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하게 바뀌었다.


“세르비카 대사님,” 게로스가 이윽고 세라비에게 물었다. “지금 마르벤과 포르트메르는 둘 다 막혀 있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희는 브뤼메 산맥을 넘어서 왔습니다.” 세라비가 대답했다.


티타임에 옆 나라 사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도 전혀 동요가 없던 왕의 표정이 순식간에 싹 변하는 것을 레이는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십 분의 일 초도 안 되어 게로스의 얼굴은 다시 단아하고 침착한 여느 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게로스는 사신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했고, 이카리아 사신단과 칼베르 왕의 첫 회동은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게로스, 세라비, 레이가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세라비 얼굴이 빨간 건 화장 탓입니다. Mabon / AI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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