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와 오래된 다리와 히드꽃

스코틀랜드의 향기

by 마봉 드 포레

탈리스커 증류소 견학

이번에도 겨우겨우 한 자리를 얻어 탈리스커(Talisker) 증류소 견학을 갔다. 탈리스커는 위스키 좀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브랜드로 스카이 섬 유일한 전통 위스키 증류소다. 지금은 토라베이그(Torabhaig Distillery-2017년 가동), 그리고 스카이 섬에서 헤엄쳐서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라세이 섬의 라세이 증류소(Raasay Distillery)도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아무리 술알못인 나라도 탈리스커 증류소 견학은 가 봐야 한다. 인원수 제한이 있다 보니 겨우 한 자리 있는 날을 찾아서 참가했다.

탈리스커 증류소는 카보스트(Carbost)라는 바닷가 마을에 있었다. 카보스트는 정말 아주아주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로크 하포트(Loch Harport)라는 바다로 이어지는 해협이 있고, 마을 등 뒤에는 블랙 쿠일린(Black Cuillins) 산맥이 있다. 바람은 겁나 세고 비는 자주 뿌려대고 사람 살긴 빡센데 위스키 만들기엔 최적인 곳이다.


탈리스커는 쿠일린 산맥에서 내려오는 차갑고 미네랄이 많은 물을 쓴다. 이 물이 깔끔하면서도 거칠지 않고 피트 향을 잘 받쳐 준다. 게다가 증류소가 해변에 아예 바싹 붙어 있어 숙성 중 오크통이 바닷바람과 습기, 염분에 계속 노출된다. 이 소금기, 해조류 느낌쓰, 차가운 바다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탈리스커 위스키에 들어간다. 이건 위치빨이라 다른 데 위스키가 흉내 낼 수 없다.


그리고 스카이 섬은 습지가 많아서 피트(토탄) 확보가 쉽다. 요새 건조할 때 전기 쓰지 누가 피트 때우냐 싶지만 탈리스커에서는 보리 건조할 때 여전히 피트를 태운다. 아일라는 이 피트를 겁나 빡세게 태워서 아예 모닥불맛 위스키를 만들지만 탈리스커는 그렇게까지 과하게는 안 한다.


투어가 끝나고 시음해 본 탈리스커 스톰(Storm)은 스카이 섬의 비바람과 카보스트 해안의 바다 냄새가 났다, 라고 하면 뻥이고 나 술맛 모른다. 그냥 왠지 멋있었다. 위스키 투어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탈리스커 디스틸러리라고 쓰여있는 흰 외벽

술을 안 마시는 사람들도 위스키 하면 다 스카치위스키를 떠올린다. 위스키를 만드는 곳은 스코틀랜드만은 아니다. 아일랜드(여기 것도 꽤 괜찮다. 스카치랑 쌍두마차다. 참고로 아일랜드에서는 위스키에 e를 붙여서 Whiskey라고 쓴다), 미국(라이보리로 만든 버번(Bourbon)이 유명하다), 일본(위스키계의 조용한 미친놈들이라는 평이 있다), 캐나다, 심지어 인도와 호주에서도 위스키를 만든다.


스카치위스키는 말 그대로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위스키이다. 하지만 꽤 빡센 규칙을 통과해야만 스카치위스키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스카치위스키의 기본 조건

○ 스코틀랜드에서 증류, 숙성

○ 오크통에서 최소 3년 이상 숙성

○ 원료는 보리(맥아) 또는 곡물

○ 알코올 도수 40% 이상

○ 물과 캐러멜 색소 이외에는 섞으면 안 됨


스카치위스키 지역 구분

스코틀랜드는 지역별로 물 맛도 다르고, 바람 다르고, 바다 거리 다르고, 연기 냄새 다르고, 그래서 위스키도 지역별로 캐릭터가 달라진다. 위스키 지역 구분은 아래와 같다.

이미지 출처: www.scotch-whisky.org.uk


1. 스페이사이드(Speyside)

○ 위치: 스코틀랜드 북동쪽 강(Spey) 주변

○ 특징: 증류소 바글바글

○ 맛: 부드럽고 달콤/과일/꿀/바닐라

○ 대표 브랜드: 유명한 거 여기서 다 나옴. 글렌피딕(Glenfiddich), 글렌리벳(Glenlivet), 맥캘런(Macallan), 발베니(Balvenie), 애버라워(Aberlour)...


2. 하이랜드(Highlands)

○ 위치: 스코틀랜드 본토의 대부분

○ 특징: 지역이 넓다 보니 스타일도 제각각

○ 맛: 꽃향부터 묵직한 몰트까지 스펙트럼 최강

○ 대표 브랜드: 여기도 유명한 거 많음. 글렌모란지(Glenmorangie - 하이랜드의 얼굴마담), 달모어(Dalmore), 오반(Oban - 나 이 증류소도 가봄), 클라이널리쉬(Clynelish), 올드 펄트니(Old Pulteney)


3. 아일라(Islay - 아일레이 아님. 아일라)

○ 위치: 서부 해안의 작은 섬(그냥 섬)인데 온리 위스키로 단일 섬 이름을 날리는 곳

○ 특징: 증류소 수는 적지만 개성이 확실

○ 맛: 피트 폭탄/연기/바다/소독약(응급실 들어가면 나는 냄새)/훈제

○ 대표 브랜드: 라프로익(Laphroaig), 아드벡(Ardbeg), 라가불린(Lagavulin), 보우모어(Bowmore), 브룩라디(Bruichladdich)


4. 아일랜드(Islands)

○ 위치: 스카이, 오크니(Orkney - 북위 59도, 개 추움, 2000년도에 가봤음. 나중에 따로 여행기 쓸 예정), 멀(Mull), 주라(Jura) 등 섬 지역

○ 특징: 행정구역상 하이랜드에 포함되지만, 맛이 너무 달라서 따로 묶어 분류함

○ 맛: 바닷바람/소금기/미네랄/개성

○ 대표 브랜드: 탈리스커,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 오크니 제도), 스카파(Scapa - 이것도 오크니), 아란(Arran), 주라(Jura), 토버모리(Tobermory), 레다이그(Ledaig)


5. 캠벨타운(Campbeltown)

○ 위치: 킨타이어 반도(Kintyre Peninsula - 폴 매카트니의 멀 오브 킨타이어(Mull of Kintyre)라는 노래 아시는 분은 들어보셨을 이름이다. 폴 매카트니가 이 킨타이어 반도 끝의 곶(Mull)에 농장과 별장을 가지고 있어서 지은 노래임)의 끝

○ 특징: 한때 위스키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잘 나갔음. 19세기에는 증류소만 30개.

○ 맛: 펑키? 한 맛이 난다고 한다. 대표적인 위스키 브랜드는 스프링뱅크(Springbank), 글렌 스코시아(Glen Scotia), 킬케란(Kilkerran) 등.


6. 로우랜드(Lowland)

○ 위치: 글라스고, 에딘버러 중심의 로우랜드

○ 특징: 18-19세기에는 증류소 많았는데 쇠퇴했다가, 다시 부활 중

○ 쇠퇴 이유: 하이랜드나 아일라 같은 와씨 이거 뭐야! 의 한 방이 없는 얌전한 스타일에다, 대도시 주변이라 땅값 비싸고 환경 규제 빡셈. 최근 신생 증류소들 다시 생기는 중

○ 맛: 부드럽고 꽃향, 풀향

○ 대표 브랜드: 글렌킨치(Glenkinchie - 에딘버러 펍 가서 로컬 위스키 달라고 하면 이거 줌), 오켄토션(Auchentoshan - 게일 어로 '밭의 모퉁이'라는 뜻)


위스키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 트레일(Speyside Whisky Trail)이라는 위스키 증류소만 찍고 다니는 트레일 투어도 있으니 찾아보면 좋을 듯하다.

카보스트의 카페에서 먹은 스코틀랜드 전통 디저트 크라나칸(Cranachan). 라즈베리, 휘핑크림, 꿀, 위스키, 오트밀(살짝 볶음)을 층층이 얹어서 낸다. 존맛탱.


이세계 같은 곳, 슬리가한(Sligachan)

당시 묵고 있던 숙소에서 카보스트로 가려면 슬리가한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근데 버스와 버스 사이 시간이 한 시간이나 돼서 나는 여기서 치마에 구두를 신은 부적절한 차림으로 트레킹을 했다.


슬리가한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내리면 헉 소리가 나는 곳이다. 아무것도 없다 함은 말 그대로다. 진짜 산과 들판, 버스 정류장, 작은 호텔 하나, 그리고 오래된 다리(Sligachan Bridge)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근데 풍경이... 아 정말 잊지 못할 장관이다.

슬리가한 올드 브리지(Sligachan Old Bridge)와 블랙 쿠일린 산맥
비현실적으로 생긴 산들
마수가 나올 것 같은 산맥

소박한 다리 하나가 있을 뿐인, 슬리가한 호텔 건물 한 채 빼고는 건물 하나 없는 곳이지만 인상은 아주 강력하다. 왜냐면 슬리가한은 블랙 쿠일린 산맥의 관문으로서 브리지 바로 뒤로 산맥이 정면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스카이 섬에서 가장 험하고, 가장 위압적인 산군인 블랙 쿠일린 산맥, 날씨가 나쁘면 판타지 최종 보스 배경 같은 장소. 브리지 아래를 흐르는 강은 그 물에 얼굴을 씻으면 젊어지고 온몸을 담그면 영원한 청춘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단, 요정이 허락하면, 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내가 거기 갔을 때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무리 추웠어도 홀딱 벗고 몸 담갔지...라고 하기엔 너무 얕다

요정 나와! 야, 나 진짜, 크게 나쁜 짓은 안 하고 살았거든? 얼굴만 좀 씻자, 응? 몸까진 안 담글게.

여기 들어가서 씻으면 된단 말이지...?

스코틀랜드의 꽃, 히드(Heather)

스코틀랜드의 꽃 하면 엉겅퀴만 떠올리는데(학교 교육의 힘) 사실 스코틀랜드, 특히 하이랜드의 꽃은 히드다. 히드는 스코틀랜드 전역, 특히 하이랜드와 섬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들꽃이다. 바람이 세고 땅이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서, 황무지와 산비탈을 낮게 덮으며 핀다.

꽃은 보통 연보라색이나 분홍빛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넓게 퍼져 있어 풍경 전체의 색을 바꿔 놓는다. 스코틀랜드의 들판이 늘 어딘가 쓸쓸하고 조용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히드 때문이다.


위의 사진에는 두 가지 꽃이 보이는데 둘 다 히드 맞다.

1. 일반 히드(Calluna vulgaris - 오른쪽 꽃)

스코틀랜드 히드 하면 보통 이거. 아주 작고 빽빽한 꽃이 달린다. 낮게 바닥을 덮듯이 자란다.

하이랜드, 스카이 섬, 이탄지(Moorland)에 가장 흔함.

황무지를 통째로 보라색으로 물들인다.


2. 벨 히드/크로스리브드 히드(왼쪽 꽃)

색이 더 진한 분홍~자줏빛, 종(bell) 모양의 꽃이 핀다. 바위 많은 곳, 물가 근처에 많이 핀다.

일반 히드보다 조금 더 키가 크고 꽃이 또렷하다.

히드가 가득 우거진 스코틀랜드의 바닷가. 꽃이 진 다음에는 마른 관목처럼 보여서 땅이 보라, 갈색으로 얼룩덜룩하다.

나는 정든 포트리를 떠나 브로드포드(Broadford), 카일라킨(Kyleakin)으로 숙소를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스카이 섬을 여행했다. 다음 회차에서 얘기할 마지막 장소인 카일라킨(역시 아무것도 없음)을 끝으로, 나는 다시 포트 윌리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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