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왕의 자세

브레보뉴 숲 (6)

by 마봉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다음날, 아무리 가도 숲밖에 나오지 않자 세라비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게로스 생각대로 브레보뉴 숲이 아니거나, 아예 리스코바 같은 외국이거나 – 아니면 감히 솔렌을 지키는 장벽을 깨뜨리러 온 자들을 벌하기 위해 신들이 만들어 놓은 다른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세라비는 말했다.


그러나 게로스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다. 식생대나 지형으로 보아 브레보뉴 숲일 가능성이 더 많고, 신들이 만들어 놓은 다른 세계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 벌하려고 했다면 그냥 죽이지 않았을까요? 하고 그는 말했다.


게로스와 세라비는 신들이 만약 괘씸한 인간을 벌하려고 한다면 즉시 죽이는 것과 살려둔 채 괴롭히는 것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에 대한 토론을 하며 이젠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폭이 두 배는 넓어진 개울을 따라 걸었다. 세라비는 자신들이 지나온 템푸스 아르카에 대한 얘기를 게로스에게 해 주었다. 게로스는 전설에서나 들은 템푸스 아르카가 진짜로 있다는 것도 처음 들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다른 나라에서 온 마법사나 사제들도 모여 살고 있다는 말에 여러 가지 이유로 놀랐다.


‘우리 해안 경비가 그 정도로 허술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들어왔지? 이건 좌시할 수 없는 문제인데.’


하지만 그는 세라비에게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세라비는 템푸스 아르카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며 자신은 거기에서 3개월 속성과정으로 라그랑쥬에게 훈련을 받았다는 얘기를 해준 다음, 레이도 거기에서 라마야나가 남긴 집을 발견하고 지팡이를 받았다고 말해 주었다.


“집이 진짜 깨끗하더라구요. 그리고 예쁜 로브도 많았어요. 물론 레… 브리엘 부대사님은 그런 옷은 쳐다도 안 보시지만요.”


“라마야나 선생님이 브리엘 부대사님에게 집과 지팡이를 남기셨다는 것은…” 게로스는 첫날 저녁식사를 같이 할 때 레이와 잠깐 라마야나 얘기를 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때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라마야나 선생님은 그럼… 돌아가신 건가요?”


“네… 부대사님이 몽켈리에에서 학교 다닐 때 돌아가셨다고 했어요.”


게로스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말에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라마야나를 다시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그의 화려한 마법도 다시 보고 싶었다. 라마야나가 칼베르를 떠났어도, 살면서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는 죽고 없었다.


“브리엘 부대사님은 라마야나 님의 친아들은 아니겠군요.” 게로스는 라마야나가 떠난 시점과 레이의 나이(이카리아 왕의 인장이 찍힌 사신 파견서에 의하면 스물다섯이었다)를 감안하면 이카리아에 도착한 다음 레이를 낳았을 리는 없다고 판단하고 이렇게 말했다.


“네, 스승님이라고 부르니 아버지는 아니겠죠? 하지만 브리엘 부대사님은 라마야나 님이 자기 가족이라고 했어요.”


게로스는 두 사람이 서로 친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세라비가 레이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비는 레이가 몽켈리에 졸업생이고(이카리아의 모든 마법사는 어차피 다 몽켈리에 졸업생이었다. 이카리아에서 마법학교는 그 학교 하나뿐이었으므로) 라마야나의 제자라는 사실 외에는 그의 성도, 진짜 가족도, 세라비를 만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었는지도 하나도 모르는 듯했다. 심지어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는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세라비는 이윽고 완만한 경사 위에 오르기 딱 좋게 기울어 자란 나무를 발견했다.


“‘이거라면 올라갈 수 있겠어요!”


“정말 괜찮겠어요?”


‘우리 위치를 파악하려면 무조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봐야 해. 지평선에 바다나 강이나 산 같은 것이 보인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파악이 될 거야.’ 세라비는 코트를 게로스에게 잠깐 맡기고, 장갑을 빌려달라고 해서 손에 낀 다음 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사 끝에 닿자 나무로 손을 뻗어 나무 중간에 있는 큰 가지에 몸을 실었다.


‘잘 올라가네.’ 게로스는 아래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라를르에서 평소에 뭐 하고 살았는지 눈에 보인다.’


세라비가 나무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굵은 나뭇가지들이 들썩이고 휘청이는 바람에 게로스는 불안해서 혹시라도 떨어지면 아래에서 받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세라비가 꼭대기에서 외쳤다.


“왜요? 뭐가 있어요?”


“망했어요! 지평선에 숲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게로스는 한숨을 쉬었다. 개울이 부디 그들을 강으로 데려다 주기를 바라며 계속 따라가는 수밖에 없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 어디선가 푸드드득! 하는 큰 날갯짓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허공을 쌩 하고 갈랐다. 게로스는 고개를 들었지만 나무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 위쪽이 위태롭게 휘청이더니 “끼이이익!!!”하는 새의 울부짖는 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다.


“저리 가!”하는 세라비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게로스가 달려가기도 전에 세라비가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게로스는 세라비에게 달려갔다. 세라비는 움직이지 않았다. 게로스는 손이 떨리는 것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훈련 중에 배웠던 것들을 차례대로 떠올렸다. 배울 때는 배운 대로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눈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며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세라비 님, 세라비!”


세라비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숨도 쉬고 맥박도 뛰고 있었다. 게로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부러진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어깨에서 팔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게로스는 세라비의 팔다리를 조심조심 움직여 똑바로 눕혔다. 제발 부러진 곳이 없어야 할 텐데. 그동안에도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으므로 게로스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그는 세라비가 나중에 정신이 들었을 때 내 옷 왜 이렇게 됐냐고 물어보지 말기를 바라며 단검을 꺼내 세라비의 옷을 목에서 소매 중간까지 쭉 찢어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나무에 긁힌 상처 치고는 깊었지만 바로 치료하면 괜찮을 것 같아 보였다. 새가 할퀸 것일까? 아니면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찢겼나? 그는 셔츠를 찢어 길게 붕대처럼 만들어서 둘둘 감아 급한 대로 지혈을 했다.


흘러내리던 피가 멎었다. 게로스는 잠시 후에 피로 물든 셔츠 조각을 떼어내고 깨끗한 천으로 다시 상처를 감았다. 목과 등 뒤로 손을 넣어 만져 보니 목뼈나 척추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로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는 경사진 둔덕에 기대서 비스듬히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이 위치라면 바람과 비는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무 바로 밑이라 뿌리와 돌로 울퉁불퉁했다. 그는 자신의 코트를 벗어 땅에 깔고 그 밑으로 부드러운 마른풀을 집어넣어 최대한 푹신하게 만들고 세라비를 뉘였다.


세라비가 안정적으로 숨을 쉬는 것 같았으므로 게로스도 떨리던 손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는 주위에 보이는 나무와 낙엽 등을 그러모아 불을 피웠다. 그런 다음 나무로 만든 물그릇을 가지고 개울에 가서 물을 떠 왔다.


‘약초학 개론이라는 거 나도 좀 들어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게로스는 세라비가 들려준 라그랑쥬 님의 수업 얘기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도 생존기술 훈련받을 때 지혈과 소독에 대한 내용을 배우긴 했었으므로 그는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쓸 만한 식물이 있는지 살폈다.


‘향은 맞는 것 같은데… 독초면 어떡하지?’


게로스는 개울가의 나무 밑에서 얌초를 뜯으며 생각했다. 분명히 비슷하게 생겼는데 오히려 염증을 일으키는 독초가 있다고 했었다. 게로스는 개울물로 풀을 씻은 다음 이게 약초일까 독초일까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단검으로 자기 팔을 그어 피가 배어 나올 정도의 상처를 내 보았다.


풀을 상처에 얹어 보니 아프거나 가렵지는 않았다. 잠시 후에 보니 피도 멎고 아픔도 잦아들었으므로 게로스는 만족하고 재빨리 세라비의 상처를 물로 잘 씻고 풀 으깬 것을 얹은 다음 새로운 천으로 다시 둘러놓았다.


급한 건 다 했다고 생각하니 게로스는 온몸에 힘이 빠져 잠시 세라비 옆의 마른땅에 드러누웠다. 좀 있으면 해도 질 텐데, 피 냄새를 맡고 산짐승이라도 오면 어쩌지?


해가 기울며 빨간 노을이 하늘을 온통 물들이기 시작했다. 게로스는 고개를 돌려 옆에 죽은 듯이 조용히 누워있는 세라비를 바라보았다. 3일째 같이 지냈지만 여성분의 얼굴을 빤히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자세히 안 봤는데, 지금 가까이서 보니 한쪽 뺨에 희미하게 상처가 있었다. 예쁜데 얼굴에 상처가 있네, 하고 게로스는 안타깝게 생각했다. 뭐 하다 다친 걸까? 나무 타다가? 담 넘다 떨어져서? 아니면 검술 훈련받다가 다쳤을까?


밤이 되었다. 부엉이 우는 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가 먼 곳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개울물이 졸졸거리며 흐르는 소리와 함께 개울 근처 풀숲에서는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게로스는 혹시라도 산짐승이 다가올까 싶어서 불을 더 크게 지펴놓고 수시로 세라비의 상태를 살폈다. 계속 뭔가 떠들어대던 사람이 조용하니 주변의 모든 소리가 매우 선명하게 들렸다. 라그랑쥬 스승님 얘기 열 번 반복해도 되니 제발 깨어나 주길 게로스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숲 속에서 팔과 어깨에 피를 흘리는 세라비를 치료하는 게로스 ⓒ Mabon / AI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


브런치북 기준 세라비 2부가 끝났습니다.

앞으로의 연재 일정입니다.

3월 3일(화): 2부 요약본

3월 4일(수): 2부 완결 이벤트

3월 5일(목): 3부 1화(61화) - 마봉은 기다리지 않긔


이번 이벤트도 놓치지 마세요!

작가가 과부 딸라빚 내서 만든 굿즈를 선보입니다!


이전 29화59. 네가 사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