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화된 슬픔, 자코바이트 반란

스코틀랜드는 어쩌다가 잉글랜드랑 한 나라가 되었나

by 마봉

영국이 어디까지가 영국인데?

백스여도 벌써 30일이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에 감화되어(개뻥) 명예 스코틀랜드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제2의 고향이 된 스코틀랜드가 어쩌다가! 잉글랜드랑 한 나라가 되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영국, 영국인'은 잉글랜드, 잉글리시이지만(학교 교육의 폐해), 사실 영국을 지칭하는 말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가 아니다.


영국 공식 국가코드 = GB(Great Britain)

일반적으로 쓰는 약칭 = UK(United Kingdom, 연합 왕국)

ISO 3166 국가코드: 2자리 코드 GB / 3자리 코드: GBR

항공, 물류, 데이터는 그래서 대부분 GB 사용

인터넷 도메인은 UK 사용

자동차 국가표시는 GB 쓰다가 UK로 변경되는 중


뭐어어? 그레이트? Great? 그뤠잇? 어우 자기네 나라를 가리켜 그레이트라고 지칭하다니 자의식 너무 심한 거 아니야? 한때 전 세계에 식민지 좀 가졌다고 너무 고자세인 것 아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레이트 브리튼은 정말 오우 그뤠잇! 할 때의 그 그레이트의 의미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영국, 아일랜드(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공화국) 그리고 맨 섬, 와이트 섬, 헤브리디스 등 기타 여러 섬들 합쳐서 = 브리튼 제도(British Isles)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가 있는 쩰 큰 섬 = 그레이트 브리튼
→ 오우 그뤠잇 아님. 그냥 브리튼 제도에서 쩰 크다고

그레이트 브리튼 + 북아일랜드 = 영국(United Kingdom)

브리튼 제도 및 영국 명칭 정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북아일랜드를 모두 합쳐 영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영국 = 잉글랜드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스코틀랜드 사람에게 아유 잉글리시? 하고 물어보면 그들은 정색하고 대답할 것이다. 노, 아임 스코티시.


이것은 웨일스에 가서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웨일스 사람들도 스코틀랜드 사람 못지않게 자존심이 세고 축구 경기에서 잉글랜드에게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한다. 그들은 특히 자기들의 고유 언어인 웨일스어(큼라이크(Cymraeg))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나 표지판도 다 웨일스어와 영어를 병기하는 것은 물론 학교에서 웨일스어를 의무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 부분은 스코틀랜드보다 더 확실하다.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섬 지역과 하이랜드를 제외하면 사용자가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추세인데 반해 웨일스어는 의무교육을 시행하는 바람에 사용자가 상당히 많다.


여러 소국으로 갈라져 있던 웨일스는 스코틀랜드보다 훨씬 빠른 13세기 후반에 아우 저것들 싹 다 정리해 버리자! 하고 쳐들어온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1세에게 정★벅 당해버렸다. 웨일스의 마지막 통일 지도자 루엘린 압 그리피드는 전사하고, 웨일스는 잉글랜드가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1500년대는 웨일스 법도 폐지되고 행정이 완전히 통합됨으로써 웨일스는 완전히 잉글랜드와 한 나라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흡수되어 버린 웨일스도 이런 마당에, 1700년대에 잉글랜드와 합병된 스코틀랜드는 "습! 잉글리시? 잉글리시? 누가 나보고 잉글리시래 나는 스코티시다!"라는 아주 강하고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 심심하면 올라오는 얘기가 "우리... 이제 독립할까?"이다.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독립을 두고 전 스코틀랜드인을 대상으로 진지 빨고 투표를 실시했는데 독립 반대 55.3%, 찬성 44.7%라는 꽤 근소한 차이로 영국에 잔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독립은 무산되었지만, 적어도 스코틀랜드 인들의 반 정도는 잉글랜드랑 갈라서고 싶어 한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되어 버렸다.


자코바이트의 반란

1603년, 우리 모두 다 잘 아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 없이 사망하자(튜더 왕조 끝),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까지 겸하게 되었다. 제임스 6세의 어머니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엘리자베스 1세의 개중 가장 가까운 혈통이었기 때문이다(잉글랜드의 왕 헨리 7세의 증손녀 - 하이고 멀다 멀어). 스코틀랜드는 자기네 왕이 잉글랜드 왕까지 겸하게 되니까 열렬히 환영했다. 잉글랜드에 그때까지 제임스라는 왕이 없었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 잉글랜드의 왕 제임스 1세가 되었다. 이것을 왕관 동군연합(Union of the Crowns)이라고 한다.


1688년, 제임스 1세의 손자 제임스 2세는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이름만 들었지 자세한 내용은 기억 잘 안 나는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으로 영국 의회에 의해 축출되어 프랑스로 텨 버린다. 영국 의회는 자기네 말 안 듣는 가톨릭 왕 제임스 2세 대신 네덜란드에 있던 제임스 2세의 딸과 사위(신교 세력)를 불러들여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로 즉위시켰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지지 세력은 당연히 개같이 반발했다. 그들은 우리 왕 도로 데려오라며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바로 1차 자코바이트 반란이다.


1차 자코바이트의 반란(1689–1692)

주축 인물 / 세력: 존 그레이엄 (보니 던디) + 하이랜드 클랜 일부

상대: 윌리엄 3세 정부군

전개: 킬리크랭키 전투에서 승리, 하지만 보니 던디 전사

결과: 지도자 사망으로 동력 상실하여 반란 자연 소멸

글렌코 대학살(아래 글 참조)은 이 1차 자코바이트 반란 끝무렵에 발생

네덜란드에서 모시고 왔던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가 또 자식이 없어 메리의 동생 앤이 여왕이 되었는데, 그 앤도 자식이 없었다(많이 낳았는데 줄줄이 다 죽음). 영국 의회는 또! 유럽으로 시집장가 간 왕가의 친척들을 뒤졌다. 다른 모든 조건보다 일단 개신교여야만 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독일의 하노버 출신인 조지 1세가 건너와 왕이 되었다(1714년).


유럽으로 망명하여 가톨릭 왕가로서 로마에서 교황의 보호를 받고 있던 제임스 2세의 아들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이름 왜캐 길어 헉헉)는 빡이 쳤다. 아니, 왕가의 자손인 나님이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왜 독일 사람을 데려와? 심지어 조지 1세는 영어도 못했다. 그는 왕위 내놓으라며 하이랜드 클랜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2차 자코바이트 반란이다.


2차 자코바이트 반란 (1715)

주축 인물 / 세력: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제임스 2세 아들) + 하이랜드 클랜 일부

상대: 하노버 왕조 (조지 1세)

계기: 1707년 스코틀랜드 + 잉글랜드 연합(*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 이후 불만 및 하노버 왕조 즉위

'외국 왕이 우리를 다스린다'는 반감

전개 및 결과: 결정적인 승리 없이 흐지부지

제임스는 다시 망명길에 올랐다. 자코바이트의 반란은 이렇게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3차 자코바이트 반란 (1745–1746) - 여기서 진짜 끝남ㅜㅜ

그로부터 30년 후, 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보니 프린스 찰리' 즉 잘생긴 찰스 왕자님,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다. 2차 반란을 일으킨 제임스의 아들인 그는 3차 자코바이트 반란을 주동했고, 성공할 뻔했다가 장렬히 실패했고, 극적으로 탈출해서 또다시 망명한 비극의 왕자님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주축 인물 / 세력: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a.k.a. 보니 프린스 찰리 + 하이랜드 클랜들(카메론 등)

상대: 영국 정부군(하노버 왕조)

목적: 스튜어트 왕가 복위 시도

그는 외(外) 헤브리디스의 작은 섬인 에리스카이(Eriskay) 섬에 몇 명 안 되는 병사들을 데리고 조용히 상륙하여 하이랜드로 들어와 클랜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망명지인 로마에서 자라는 바람에 게일어도 못해서 통역을 데리고 다녀야 할 정도였지만 스튜어트 왕가의 정통성을 지닌 찰스 왕자에게 클랜들은 점차 설득되었다. 마침내 찰스 왕자는 글렌피넌에서 자코바이트의 왕가 깃발을 게양하고, 자신이 왕임을 선언하였다. 3차 반란이 공식적으로 막을 올린 순간이었다.

글렌피넌에서의 자코바이트 깃발 게양과 반란 선언 장면(게양한 깃발은 푸른색 깃발이라고 하는데 정확히 전해진 것은 없다)

찰스가 이끄는 자코바이트 군은 처음에는 승리를 거두었고, 여세를 몰아 진짜로 런던 근처까지 밀고 내려갔다. 어어 이거 진짜 되려나?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자코바이트 군은 다시 스코틀랜드로 후퇴했고, 마지막으로 컬로든 전투에서 더 이상 재기 불가능한 패배를 함으로써 반란은 영원히 막을 내렸다. 보니 프린스 찰리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고, 산과 동굴과 헛간에서 자며 숨어 다니다가 플로라 맥도널드가 자기 하녀로 변장시켜 스카이 섬으로 탈출시켜 가까스로 프랑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의 탈출을 노래한 유명한 노래이자 아웃랜더 오프닝 곡으로도 쓰인 스카이 보트 송(Skye Boat Song)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Speed bonnie boat, like a bird on the wing
Onward! The sailors cry
Carry the lad that's born to be King
Over the sea to Skye

날쌘 배여, 날개 달린 새처럼 앞으로 나아가라
앞으로! 선원들이 외친다
왕이 될 운명의 그 청년을
바다 건너 스카이로 데려다 주어라


자코바이트 반란 후의 스코틀랜드

세 차례의 반란이 컬로든 전투에서의 참패를 마지막으로 모두 실패로 끝나자, 영국 정부는 하이랜드의 클랜 시스템이 언제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위협이라고 판단하고 아주 철저하고 가혹한 탄압 정책을 펼쳤다. 어느 정도로 가혹했는지 살펴보면 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를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말살

타탄과 킬트 금지: 하이랜드의 전통 의상인 킬트를 입거나 가문 고유의 타탄 무늬를 사용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 되었다. 이것을 어기면 감옥에 가거나 유배를 가야 했다.

무기 소지 금지: 모든 하이랜드인은 무기를 소지할 수 없게 되었고, 이를 어기면 엄벌에 처했다.

백파이프 연주 금지: 백파이프는 '전쟁용 도구'로 간주되어 공공장소에서의 연주가 금지되었다.

언어 탄압: 스코틀랜드 게일어의 사용이 금지되고 영어 사용이 강제되었다.


클랜 시스템과 클랜 수장의 가부장적 권위 박탈

원래 클랜 수장(Clan Chief)은 자기 땅의 사람들에 대해 사법권과 군사 소집권을 가진 군주 같은 존재였다. 영국 정부는 속령 관할권 폐지법(Heritable Jurisdictions Act)으로 이 권한을 모두 몰수하여 클랜 수장들을 단순한 지주와 같은 존재로 전락시켰다.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

문화적 탄압보다 더 가혹한 것은 경제적 축출이었다. 하이랜드에 사람이 사는 것보다 양을 키우는 게 더 돈이 된다고 판단되자 하이랜드에 살던 사람들은 대대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 강제 퇴거되었다. 집에 불을 질러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갈 곳이 없어진 하이랜드 사람들은 해안의 척박한 땅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으로 떠나는 거대한 이민 행렬에 올랐다. 북미에서 Mac으로 시작되는 성씨들이 흔해 빠진 이유는 다 이때 살 길을 찾아 떠난 스코틀랜드 이민자들 때문이다.


클랜 문화는 사실상 영국 정부에 의해 강제로 해체되고 만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월터 스코트 경(Sir Walter Scott)이 그의 소설 '웨이벌리(Waverly - 에딘버러의 메인 기차역이 웨이벌리인데 이 소설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에서 '고귀한 패배자'의 낭만적인 이미지로 재포장하여 지금의 관광 자원 같은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지금이야 스코틀랜드 도착하는 순간부터 귀싸대기 때리듯이 백파이프 소리 들려오고, 남자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복이나 정장 입듯 킬트를 입고 심지어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로열패밀리도 공식적인 예복으로 킬트 입고 나타나지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한때 탄압받았고 말살될 뻔했던 것들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집도 불타버리고 고향에서 쫓겨나 이민길에 올라야 했던 많은 하이랜드 사람들의 피눈물이 숨어 있다.


낭만화된 슬픔

글렌피넌 근처의 로크 실(Loch Shiel) 옆에 있는 글렌피넌 기념비 위에는 킬트를 입은 자코바이트의 전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815년, 자코바이트 반란이 스코틀랜드 문화 속에 낭만적으로 재해석될 무렵 세워진 이 기념비는 자코바이트 스팀 트레인을 타고 하이랜드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글렌피넌 고가교를 지날 때 창밖을 보면 호숫가에 우뚝 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이다. 바로 이 자리가 찰스 왕자가 군기(왕가 깃발)를 올리고, 클랜들은 그의 뒤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뜻을 같이 할 것을 맹세한 곳이다.

이 관광 열차가 '자코바이트'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포트 윌리엄에서 말레그까지 이어지는 이 노선은 자코바이트 지지 세력의 근거지였던 하이랜드의 거친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열차 운영사인 웨스트 코스트 레일웨이(West Coast Railways)는 1995년에 이 노선의 이름을 정할 때, 이 지역의 가장 강렬한 역사적 정체성인 '자코바이트'를 선택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호그와트 익스프레스로 더 유명하지만, 사실 이 열차는 자코바이트 반란이 시작된 성지(글렌피넌)를 지나 그들의 슬픈 역사가 어린 땅을 ‘자코바이트’라는 이름을 단 채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 글 예고: 극적으로 탈출한 보니 프린스 찰리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낭만적인 전설 때까지가 딱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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