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윌리엄에서 서부 여행 마무리
7월 31일, 여행 18일째.
올 때는 기차 타고 배 타고 아마데일에서 동네 버스 한 시간 기다려서 포트리에 도착했는데, 갈 때는 카일라킨에서 버스 한번 타고 스카이 브리지 넘어 바로 포트 윌리엄까지 갔다. 원래 포트 윌리엄에서 포트리를 거쳐 우이그까지 버스가 다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기차 타고 배 타고 그 고생을 하면서 간 거였다. 나처럼 제대로 안 알아보고 다니는 여행자에게는 당연한 고생길이다.
카일라킨에서 포트 윌리엄까지 요금도 겨우 23파운드밖에 안 하는데 내가 뭐 하러 그 비싼 기차 타고 배 - 동네 버스로 갈아타면서 갔는지 모르겠다. 포트 윌리엄으로 가는 도로는 경치도 무지 좋았다. 무엇보다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동선에 안 맞아 못 간, 로크 두이크(Loch Duich) 호숫가에 세워진 13세기 성 엘런 도넌(Eilean Donan Castle)을 버스에서나마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포트 윌리엄에서 이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리면 엘런 도넌 성에 갈 수 있는데 난 그것도 몰랐네. 내가 조금만 부지런했으면 여기도 가봤을 텐데 중간에 농땡이를 너무 많이 친 모양이다.
다시 돌아온 포트 윌리엄은 웬일로 파란 하늘이 보이며 활짝 개어 있었다. 읍내(?)에 가 보니 어머 웬일? 포트리 광장에서 독일 소시지, 미국 햄버거, 이태리 에스프레소, 프랑스 크레이프 팔던 그 노점들이 모두 다 포트 윌리엄 읍내에 와 있었다. 모두 같이 움직이는 것은 아닌 모양인지 스페인 빠에야 가게랑 프랑스 치즈 가게는 안 보였다. 빠에야 다시 먹고 싶었는데 아쉽... 괜히 가서 노점 주인들한테 아는 척을 했다. 튀르키예 로쿰 파는 아저씨가 반갑다며 말린 히비스커스 설탕 절임을 하나 주었다.
숙소는 그때와 같은 대학 기숙사 건물이었다. 짐 풀고 먹을 거 사러 숙소 옆 슈퍼에 가는 길에 짹짹 소리가 나서 보니 슈퍼 지붕 위 둥지에서 떨어져 못 올라가고 있는 아기새가 계속 짹짹 울고 있었다. 다시 올려주고 싶은데 나도 지붕 위에 못 올라가니 어미새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고양이라도 지나가다가 얘 보면 그냥 한입거리일 텐데 부디 둥지로 잘 올라갔기를 빈다.
포트 윌리엄에 왔으니 그래도 영국 최고봉 벤 네비스를 먼발치에서라도 구경해야겠다 싶어서 좀 오래 걸을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차도 없고 버스 시간표 이런 거 보는 사람 아니니까 그냥 구글 지도 보고 포트 윌리엄에서 글렌 네비스 골짜기로 걸어갔다. 무식하게.
날씨도 좋고 그냥 슬슬 걸어가 보지 뭐~ 하고 가봤는데 나중에 거리 계산해 보니 편도 5~6km였다. 아이고 나 죽네. 하루에 10~12km를 걷다니, 운동이라고는 숨만 쉬는 내가! 하지만 앞으로 많이 걸어야 할 코스가 기다리고 있었다(다음 회차부터 시작). 그거 연습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난 뚜벅이니까 교통수단이 도보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걷는 수밖에 없다.
8월 2일, 여행 20일째. 내일은 포트 윌리엄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부터 나는 서부 여행을 마치고 동쪽으로 떠나야 한다. 그래도 가기 전에 유명한 글렌코(Glencoe) 구경은 하고 떠나야지 싶어서 다녀왔다. 글렌코는 산과 골짜기가 이루는 장엄한 풍경으로도 유명하지만 그전에 글렌코 대학살로도 유명한 곳이다.
잠시 역사 공부 시간.
엘리자베스 1세가 뒤를 이을 자식이 음써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잉글랜드 기준으로는 제임스 1세)가 왕위를 이어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처음으로 같은 왕을 섬기게 되었다. 당연히 스코틀랜드의 가문들은 스튜어트 왕가에 우호적이었다.
그 후 제임스 2세가 귀족들하고 대립하다가 명예혁명으로 퇴위되어 프랑스로 튀고, 대신 네덜란드에서 제임스 2세의 딸과 외국인 사위가 건너와 윌리엄 3세와 메리 여왕으로 공동 즉위를 했다. 여기까지는 뭐 대충 몰라도 된다.
제임스 2세를 따르던 스코틀랜드의 가문들은 혼란에 빠져 분열되어 지들끼리 싸우고 난리가 났다. 그러나 여전히 제임스 2세를 따르던 세력(재커바이트 Jacobite)은 강려크한 세력으로 남아 있었다.
재커바이트의 반란이 얼추 진압되고 나서 윌리엄 3세는 스코틀랜드의 가문들에게 1월 1일까지 충성 서약을 하러 와라, 그러면 반란 일으킨 거 용서해 주고 안 하면 사형! 하고 통보했다.
제임스 2세가 복귀할 가망도 없으니 그냥 가서 서약해도 되겠구만, 명예와 맹세를 중시하는 스코틀랜드의 클랜 족장들은 외국으로 도망간 제임스 2세한테 편지를 보내서 일이 이렇게 되어갖고요, 저희 윌리엄 3세한테 충성 서약할라구 하니까 허락해 주세염! 하고 요청했다.
글렌코의 맥도널드네도 제임스 2세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1월 1일까지 서약하러 가야 되는데 답장이 12월 28일에 도착했다. 그래서 뒤늦게 출발한 글렌코의 맥도널드네 수장 맥클레인은 날씨도 안 좋고 기타 등등 여러 이유로 서약에 늦고 말았다.
서약도 했는데! 재커바이트의 잔당을 뿌리째 뽑고 본보기를 보여야겠다고 생각한 윌리엄 3세는 처음부터 자기한테 충성하던 캠벨 가문을 시켜 130명의 군사를 글렌코로 보냈다. 맥도널드네 사람들은 의심 없이 이들을 환대하고 무려 10일 동안이나 맛있는 거 먹이고 재워 주었다.
2월 13일 새벽, 캠벨의 군사들은 갑자기 돌변해서 맥도널드네 사람들을 여자도 노인도 어린애도 모두 다 학살하고 집도 다 불살라 버렸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도망치다가 겨울의 험준한 골짜기에서 모두 얼어 죽고 말았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이나 공식적인 처벌이나 견책조차 없었다. 왕이 시킨 건데 뭐 누가 누굴 견책해.
이 사건은 본보기를 보이려는 잔인한 학살극이었지만 오히려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는 배신감과 복수심을 깊이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글렌코는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관리하고 있고 주변 경관이 무시무시하게 장엄하지만 사실 차 타고 지나가면서 봐야 그 맛을 안다. 나는 뚜벅이라... 버스 타고 중간에 내려서 사람이 다니는 길도 없는 도로를 걸어 글렌코 비지터 센터까지 가서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는 게 전부였다.
나는 포트 윌리엄의 학생 기숙사를 떠나 그레이트 글렌 웨이(Great Glen Way) 125km를 걸어서 완주하는 코스를 시작하기 위해 규사한(Giusachan) B&B로 옮겼다. 여기가 여행사에서 잡아준 내 첫 숙소다. 숙소에는 여행사에서 미리 보낸 지도, 가이드북, 숙소 위치, 주의사항 등이 들어 있는 우편물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숨쉬기 말고는 운동 따위 해본 적 없고, 산은커녕 평지도 잘 안 걷는 내가 과연 이런 대장정을 해낼 수 있을까? 일단은 포트 윌리엄은 주변에 산이 많고 글렌 네비스, 글렌코, 벤 네비스 등 산동네 초입이다 보니 등산용품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다들 빅 세일이라고 써붙여 놓고 있었다(보기만 해도 설레는 글자). 한국 출발할 때 등산바지와 방수되는 등산재킷을 준비해 오긴 했지만 그래도 가서 현지에 맞는 등산재킷, 등산화, 배낭 방수 커버, 그리고 폴딩 스툴을 샀다.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