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버린 땅
세인트 킬다는 스코틀랜드 본토에서도 70km, 스카이 섬에서도 배 타고 네 시간이나 가야 하는 아주 먼 외해의 섬이다. 기원전 2000년 전 청동기 시대부터(희미해서 그렇지 신석기시대 유적도 있다) 사람이 산 흔적이 있을 정도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1930년에 마지막 주민들이 전원 본토로 이주하면서 무인도가 되었다.
지금은 내셔널 트러스트 스코틀랜드(National Trust for Scotland (NTS))와 Historic Environment Scotland가 관리하고 있으며 여름에만 연구자와 관리자들이 소수 상주한다. 정기 여객선이 다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관광은 허가를 받아야만 할 수 있다.
지도 보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 섬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스카이 섬 어딘가에서 세인트 킬다에 대한 안내문 비슷한 것을 보아서인 것 같다(잘 기억은 안 남).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것도 흥미로운데(섬 좋아함 - 근데 뱃멀미가 심해서 가지를 못함) 사람들이 집단 이주해서 버려진 섬이라는 것은 더더욱 흥미로웠다.
세인트 킬다는 아래와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히르타(Hirta): 사람이 살던 중심 섬
둔(Dùn), 소이(Soay), 보러레이(Boreray): 거의 절벽과 바위뿐인 섬들
여기서는 대체 뭘 해먹고 살았을까? 이 섬에 살던 사람들의 주식은 농사가 아니라 바닷새와 바닷새의 알이었다. 그 바닷새를 어떻게 잡았느냐... 로프 하나에 의지해서 수직 절벽을 타고 내려가서 잡았다(미친 난이도).
일단 세인트 킬다가 스코틀랜드 본토에서 가장 먼 섬은 아니다. 가장 먼 섬은 셰틀랜드 섬(Shetland Island)이다. 하지만 살기 험하기로는 세인트 킬다를 따라올 수가 없다. 왜?
위치만 봐서는 셰틀랜드가 훨씬 멀다. 노르웨이 영토인 파로 섬(Faroe Islands)은 그보다 더 멀다. 그러나 셰틀랜드나 파로 섬은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보자.
위치 극악 - 대서양 정면타
세인트 킬다는 북대서양에서 오는 바람, 파도를 가려줄 게 없다.
본토나 다른 섬이 방파제 역할을 해 주지도 않아 대서양을 그냥 맨몸으로 받는다.
셰틀랜드는 섬 자체가 크고, 군도가 층층이 있어서 바람과 파도가 분산된다.
파로 섬도 마찬가지다. 섬도 크고(섬 18개), 피오르드가 곳곳에 있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고 항구도 만들 수 있다. 나무는 없지만 단열이 잘 되는 잔디 지붕(Turf roof)을 사용해서 호빗 집처럼 땅 속에 파묻힌 듯한 집을 짓고 사는 풍경이 특이해서 나름 인기 있는 관광지다.
바람 + 습기 + 토양 = 농사 불가 콤보
세인트 킬다는 연중 강풍, 돌풍 기본옵션, 나무가 아예 못 자라는 곳이라 숨을 곳이 없다. 비 + 안개 + 염분으로 곡물 저장도 못한다. 토양은 얇고 바위투성이라 농사도 못 지으니 가축도 소량만 겨우 키울 수 있다. 그래서 주식이 바닷새와 알, 물고기뿐이다.
셰틀랜드는 풀도 자라고 양도 키울 수 있고 저장 농업도 가능한 환경이라 다르다. 게다가 셰틀랜드는 북대서양 난류(멕시코만 난류)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기 때문에 위도는 북위 60도나 되는데도 날씨가 상대적으로 덜 미쳐 있다. 카리브해의 따뜻한 물을 끌어올려 저~기 멀리 북대서양의 아일랜드와 영국 서부에 뿌려주는 이 난류가 얼마나 대단한 난류인가 하면 2000년에 이너 헤브리디즈 섬들 중 하나인 아란(Arran)에 갔을 때 거기서 풍차야자(내한성 야자)가 자라고 있어서 기겁을 했다. 그것이 다 난류님의 은혜다.
파로 섬은 풀도 잘 자라고, 감자나 보리농사까지도 가능하다. 양 대량 사육도 가능해서 식단도 안정적이다. 여기도 난류님의 은혜로 극단적으로 얼어붙지 않는다.
심리적 고립
셰틀랜드: 섬들이 여러 개라 섬에서 다른 섬이 보이고, 배가 오가는 항로 안에 있다. 세상의 끝에 있다는 감각은 없다.
파로 섬: 스코틀랜드나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 가는 항로 안에 있다. 위치에 비해 고립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세인트 킬다: 날이 맑아도 보이는 게 없다. 바다밖에 없다. 말 그대로 대서양에 던져놓은 바위나 마찬가지.
이 섬은 스카이 섬의 양대 클랜인 맥클리오드와 맥도널드네의 경주 얘기로도 유명하다. 이딴 곳도 땅이라고 당시 스카이 섬에서 내가 강하네 네가 강하네 하고 싸우던 맥클리오드와 맥도널드는 어느 날 세인트 킬다를 차지하기 위해 준비땅을 한다. 제일 먼저 세인트 킬다에 손을 대는 팀이 차지하기로 한 것이었다.
경주가 시작되었다. 둘 다 막상막하였다! 그런데 세인트 킬다에 거의 도착할 때가 되니까 맥도널드네가 조금 앞섰다. 그러자 맥클리오드네 사람이 팔 한쪽을 뎅겅 잘라 뭍으로 던지면서 "손 먼저 닿았으니까 인제 우리 거"라고 선언해 버렸다.
그래서 세인트 킬다는 그 이후로 27대 맥클리오드 족장인 레지널드 맥클리오드가 덤프리스 영주한테 팔아먹을 때까지 맥클리오드네 땅이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그런데 이 '먼저 손 닿는 사람이 임자' 경주에서 손 잘라 던졌다는 얘기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다른 지역에서도 내려오는 전설이다. 아마도 그 전설들 중 하나가 오리지널일 것이고 나머지는 다 아류작일 거라 추측해 본다.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수천 년을 사람이 산 곳인 만큼 앞으로도 못 살 것도 없는데 왜 버려졌는가 하면:
외부 문물 유입
전염병도 같이 유입
경제 붕괴
정신적 고립
이 원인이었다. 특히 전염병은 심각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선교사, 행정 관리하는 사람들, 관광객들이 들어오면서 외부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에 섬사람들은 면역이 전혀 없었다. 스페인 독감, 홍역, 백일해. 특히 1918-1919 외부 선박을 통해 들어온 스페인 독감은 치명적이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주민들이 거의 동시에 쓰러지고 돌볼 사람도 없었다. 작은 공동체에서 이정도면 시스템 셧다운을 의미한다.
홍역과 백일해는 그렇지 않아도 신생아 파상풍 등으로 태어나는 아기들이 다 살아남지 못하는 환경에서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이었다. 반복되는 전염병으로 세인트 킬다는 점점 재생 불가능한 인구 구조가 되어갔다. 아이를 낳는 것이 죄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신의 뜻, 저주, 운명이라 받아들이던 섬사람들은 폭풍, 굶주림도 견딜 수 있었지만 주민들이 계속 죽는 것은 견딜 수가 없어 마침내 1930년, 겨우 30명가량의 인구가 모두 서명해서 정부에 이주를 요청했다.
세인트 킬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반 정도는 스코틀랜드 인으로 인식했지만 '세인트 킬다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다. 그래서 도저히 살 수 없어 이주하기로 결정하기는 했지만 섬을 떠날 때의 모습은 마치 장례식과도 같았다. 노인들은 무릎을 꿇고 흙을 움켜쥐었다. 젊은 사람들도 나이 든 사람들도 배에 올라 멀어져 가는 섬을 보며 모두 울었다.
본토로 이주한 세인트 킬다 사람들의 운명도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섬에서는 공동체의 일부였고 쓸모가 있는 사람들이었으나 본토에 와서는 '불쌍한 섬사람'처럼 되어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 등으로 조기 사망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스스로 떠나기를 결정해서 버려진 섬이라는 점에서 세인트 킬다는 매우 특별한 곳이다. 관광도 쉽지 않은 곳이지만 여름 한철에는 스코틀랜드에서 투어가 있으니 혹시라도 진짜 궁금하신 분은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안락하고 뽀송하며 겨울에 반팔 입고 귤 까먹을 수 있는 집이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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