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킬다의 강제 종료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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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 드 포레 작가님의 여행기를 읽다가 세인트 킬다(St. Kilda) 대목에서 멈췄다. 스카이 섬에서도 배로 네 시간을 더 가야 하는 신이 던져놓고 잊어버린 듯한 이 바위섬의 기록은 정보학 연구자인 나에게 꽤 묵직한 데이터로 다가온다. 수천 년간 유지되던 이 고립된 시스템이 왜 1930년에 결국 '강제 종료(Shutdown)'를 선택했는지, 그 비극적인 서사를 나만의 시선으로 정리해 본다.
환경 결정론의 끝판왕 : 셰틀랜드는 사는데 너는 왜?
지도설명을 보면 셰틀랜드가 훨씬 북쪽이고 멀어 보이지만, 실질적인 '생존 난이도'는 세인트 킬다가 압도적이다. 셰틀랜드나 파로 섬이 군도의 방파제와 난류의 은혜를 입어 나름 '살만한 멀티'라면, 세인트 킬다는 대서양의 성난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외로운 단일 서버'였다.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주민들은 로프 하나에 의지해 수직 절벽을 타고 바닷새를 잡았다. 이건 단순한 사냥이 아니라 목숨을 건 일상적 투쟁이다. 정보학적으로 보면 가용 자원이 극히 제한된 '저대역폭 환경'에서 인류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잔인한 실험장과 같았다. 난류라는 시스템 최적화 혜택도 받지 못한 채, 그들은 오직 새의 알과 물고기라는 단조로운 데이터에 의지해 수천 년을 버텨냈다.
맥클리오드의 잘린 손 : 소유권에 대한 지독한 집착
세인트 킬다의 소유권을 두고 맥클리오드와 맥도널드가 벌인 경주는 실소와 경악을 동시에 자아낸다. 먼저 땅에 손을 대는 쪽이 임자라는 규칙에 따라, 맥클리오드 가문의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잘라 섬으로 던졌다는 전설. "내 손이 먼저 닿았으니 이제 내 땅이다"라고 외치는 그 광기 어린 집착은 오늘날의 '도메인 선점'이나 '특허 전쟁'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잔혹하다.
그 잘린 손은 결국 세인트 킬다라는 물리적 공간을 맥클리오드라는 데이터 아카이브에 귀속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피로 얻어낸 영토도 결국은 덤프리스 영주에게 팔려 나갔다. 인간의 소유욕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이고 허망한 메타데이터인지, 세인트 킬다의 깎아지른 절벽은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외부 노출이라는 이름의 치명적 바이러스
세인트 킬다 시스템을 붕괴시킨 결정타는 역설적이게도 '연결'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유입된 선교사와 관광객들은 문명이라는 선물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섬사람들에겐 존재하지 않던 '전염병'이라는 악성 코드를 심어놓았다. 스페인 독감과 홍역은 면역 체계가 전무했던 이 폐쇄적 공동체의 인구 구조를 순식간에 파괴했다.
신생아 파상풍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외부에서 온 독감으로 마을 전체가 쓰러지는 상황에서 시스템의 재생산은 불가능해졌다. 더 이상 '세인트 킬다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주민 30명이 스스로 이주를 요청하며 섬을 떠나는 장면은 한 시대의 아카이브가 영구 삭제되는 장례식과 같았다. 본토라는 거대한 서버로 편입된 그들이 겪은 우울증과 부적응은 고립된 데이터가 갑자기 거대 네트워크에 연결되었을 때 겪는 '호환성 오류'의 슬픈 단면이다.
세인트 킬다의 무너진 돌담은 우리에게 묻는다. 안락한 거실에서 귤을 까먹으며 디지털의 파도를 즐기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있는지 말이다. 그들이 버리고 떠난 것은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라, 문명이라는 이름의 외부 간섭이 닿기 전의 순수했던 생존의 기록이었다.
나 역시 연구자로서 수많은 정보를 연결하고 공유하는 데 집착하지만, 때로는 세인트 킬다처럼 '우아한 고립'이 주는 보존의 힘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배 타는 건 질색이고 뱃멀미는 더 싫지만, 마음속에 세인트 킬다 같은 단단한 바위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거친 정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